하늘을 바라보며 살기
하늘을 바라보며 살기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01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해가 바뀌었습니다. 2019년이 되었고, 사람들은 새해 첫날이면 해마다 숭고한 의식처럼 해맞이로 신새벽을 깨웁니다. 산꼭대기에 오르기도 하고, 누구보다 먼저 해의 기운을 맞이하기 위해 동해로 긴 여정에 나서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새해 첫해를 들판에서 맞았습니다. 여기저기 해돋이 명소를 살펴보다가 청주 땅 문암생태공원에서 당당하게 떠오르는 새해 첫 태양의 기운을 기꺼이 받았습니다.

`먼저' `빠르게'보다는 `멀리' `넓게'태양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산봉우리를 간신히 비추는 햇살보다는 정북토성과 미호천, 그리고 무심천을 아우르며 멀리 사람들이 사는 집들도 아낌없이 눈부시게 하는 햇살을 만나 한껏 청량합니다.

2019년 첫날 해를 맞으며 나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우암산 정상의 두 봉우리 사이로 어김없이 솟아나는 붉은 기운을 마주하면서 한 점 태양보다는, 그 빛을 받아 색깔을 바꾸면서도 때가 되면 언제나 의연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하늘이 있음을 그동안 잊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겨울은 마냥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동지를 지난 새벽하늘은 날카로운 차가움이 남아 있으되 어둠의 길이는 날마다 짧아지고, 별자리와 달의 궤적 역시 나날이 다른 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무겁고 두려운 세상 탓만 하면서 늘 고개를 숙이고 사는 탓에 하늘을 올려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100년 동안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世界萬邦)에 고(告)하야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고(誥)하야 민족자존(民族自存)의 정권(政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는 기미독립선언문의 처음 의미를 외면하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100년 전 파고다공원 대신 태화관에 모여 일본경찰에 숨죽어 통보하던 태양과, 경향각지로 들불처럼 퍼져 나가며 횃불과 흘리는 피를 주저하지 않았던 민중의 당당한 하늘은 스스로의 빛남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3.1운동 100년을 앞두고 우리는 인류평등과 민족자존의 숭고한 의미를 결코 잊지 않고 있는 민중의 하늘을 이미 만나고 있습니다. 매서운 한겨울을 차디찬 광장에서 녹여내며 꺼트리지 않았던 촛불은 우리의 하늘입니다. 그런 촛불이 있었기에 우리는 기나 긴 세월동안 총과 칼, 온갖 인류 궤멸의 무기를 마다하지 않고 적으로 마주했던 동포의 닫혔던 가슴을 비로소 열었고, 마침내 `평화와 번영'이라는 같은 하늘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촛불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마음껏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상해임시정부의 투혼과 면면히 이어오는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3.1운동 이후 100년을 눈가림하던 질곡의 세월을 견뎌왔던 우리가 촛불이 아니었으면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지점일지라도 실컷 비판과 꾸지람을, 그리고 `달라진 게 없다'거나 `너무 달라진 게 많다'는 하소연조차도 지금처럼 마음껏 할 수 있었겠습니까.

3.1운동 100년을 맞는 올해, 그동안의 우리는 너무도 바꿀 것이 많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바꾸지 못한 채 살아왔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촛불 덕분에 그동안의 세상이 이토록 바꿔야 할 것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폭력과 차별에 당당해지는 여린 백성의 꿈이 영글고 있음을 새해에는 각별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적폐청산이거나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및 근로시간 단축은 그동안 미처 바꾸지 못했던 것들을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그런 혁명적 변화를 체감하기에 촛불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나는 적어도 올해만큼은 눈 부신 태양으로 남겠다는 욕심을 경계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늘을 닮기 위해 머리를 들어 자주 하늘을 우러러볼 것이며, 스스로가 하늘이고, 모든 가난한 이웃이 하늘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새해. 우리 모두 세상에 두루 나누어 줄 복을 많이 만들어야 할 새날이 밝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