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맞이
겨울맞이
  •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 승인 2018.12.20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주부들에게 김장은 겨울맞이 중 가장 큰일이다. 배추, 무는 물론 각종 양념을 준비한 후 배추를 절이고 씻고 소를 넣는 과정들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맞벌이 가정도 많고 김치 수요도 적어 김장을 포기하기도 한다. 외식도 많아졌고 식생활도 변해가니 김치 수요도 전처럼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김장도 사 먹는 가정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나 역시도 직장 생활을 하지만 습관처럼 익숙해진 탓인지 김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11월이 시작되면서 김장 준비를 시작했다. 주부 생활 30년인데 내 손으로 온전히 하는 김장 준비는 처음이다. 늘 친정에서 온 가족이 모여 함께 했다. 친정아버지가 계실 때는 젓갈을 제외한 모든 채소는 부모님이 기른 거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은 어머니가 혼자 농사를 지으셨는데 연세가 높아지며 점점 힘들어하셨다. 다들 바쁘다 보니 모이기도 쉽지 않아 김장을 각자 하자고 몇 년 전부터 이야기는 했는데 따로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작년까지는 같이 했다.

일 년 먹거리 준비니 형제·자매 모두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하며 김장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뒤꼍에 김장 움막이 따로 있었고 항아리에 김치를 담아 묻었다. 살얼음이 낀 동치미 국물이 맛있었다고 지금은 그 맛이 안 난다며 추억을 소환하는 즐거움도 컸다. 하지만 친정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 농사를 짓는 것도 힘들고 일요일에 일하는 나로서는 김장하러 가지도 못하면서 동생들에게 얻어먹기도 미안해 올해는 따로 하겠다고 했다.

먼저 2년 전에 사 두었던 멸치젓갈을 3-4일 동안 내렸다. 오랫동안 곰삭아 그런지 비릿한 생선 냄새보다는 구수한 젓갈 향이 진동한다. 올해는 맛있다는 자하젓도 샀다. 다음으로 절임배추를 주문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강원도 고랭지 배추를 예약했다. 100일 이상 키운 단단한 배추라고 해서 가까운 동네를 마다하고 주문했다. 가을에 사 두었던 고추도 꼭지를 따고 방앗간에 가서 빻아 왔다. 마늘도 한 접 까서 찧어 놓고 생강도 까서 찧었다. 김장은 시작도 안 하고 준비만 하는데도 지치는 것 같았다.

부모님 집에서 할 때는 가서 해 오는 것만도 힘들다고 했는데 모든 준비를 하려니 경제적인 비용도 적지 않고 준비할 것도 많았다. 많지도 않은 절임배추 세 박스인데 준비는 100포기를 하는 것처럼 해야 했다. 절임배추를 샀으니 쉽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었다. 양념소를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배추김치, 깍두기, 백김치, 갓김치 등을 세 번에 걸쳐 담그며 올 김장을 끝냈다. 다행히 큰 딸 아이가 와서 도와주어 수월하게 김장을 마무리했다.

김장을 다 끝내고 나니 뭔가 큰일을 해결한 듯 후련하다. 올해의 시행착오를 경험으로 내년 김장은 더 맛있게 잘하겠지, 잠시 생각도 스친다. 친정 부모님은 4남매에게 매년 이렇게도 사랑을 베푸셨으니 나도 앞으로는 딸들에게 김장해 줘야 하지 않을까. 김장을 돕던 딸이 자신은 사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처음으로 김장을 하며 난 또 그렇게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