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우리 안의 깊은 분단
불평등, 우리 안의 깊은 분단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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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4월 27일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은 누가 뭐래도 올 한해 가장 가슴 벅찬 순간으로 손꼽힌다. 봄은 한창이었고,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멈춰 선 듯한 기다림 끝에 남과 북의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을 스스럼없이 넘나들었다. 파란 나무다리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경계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할 것으로 여겨졌던 분단의 시대가 가고 마침내 평화와 번영이라는 희망의 기운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음을 더디지만, 여전히 믿고 있다.

분단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고착화된 무감각의 세계였다. 관제 궐기대회를 통해 북한을 규탄하고, 생필품 사재기에 골몰하며 전쟁의 두려움에 떨기도 했던 시절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북풍은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또 기득권을 지키려는 편 가르기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 불안과 두려움의 호들갑 대신 분단에 대한 무감각으로 삶의 곤궁함을 대체하고 있다.

체제의 다름이 가져 온 분단의 아픔은 비핵화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의 결정적인 이해와 양보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기의 조급함과 함께 항구적으로 깨지지 않을 신뢰가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 분단시대의 종말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지극히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일상은 분단에 대한 감각의 유무를 떠나 지금껏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경제라는 틀 안에서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그 전쟁터에서 우리는 미국과 북한의 태도에 조바심을 내는 대신, 친구이거나 동료를 가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타자와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옥과도 같은 경쟁에서 우리는 극도의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 불평등은 결국 우리 안에 함부로 깊어진 분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득권 관료 재벌집단과 평범한 국민이라는 우리 안의 극단적 분단의 세계에서 또 한 명의 푸른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이쯤이면 이 땅에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울부짖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한 해 동안 1천 명가량의 피 끓는 생명이 목숨을 빼앗기는 나라에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이 완전하게 확보되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감옥에 가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대로 `통일은 대박'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의 미련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는 당장의 집 없는 서러움과 생명을 위협받는 실업, 온갖 학대와 모멸을 감수해야 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현실이다.

어김없이 컵라면이 유품으로 남은 청춘의 주검 앞에서 “정도가 압도적인 고통, 결말이 죽음에 이르는 절대적인 고통, 전적으로 자기와는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고통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엄기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는 문장은 섬뜩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통해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말할 힘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금 우리는 `촛불'로 만든 정권에 대해 깊게 침묵하면서 스산한 2018년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은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반동의 무리는 함부로 지껄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작가 고병권은 “희망이 희망으로만 남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누렇게 변색된 두 글자를 절망이라고 읽는다.”라고 경고한다.

더 늦기 전에 촛불집회를 통해 표출됐던 혁명적 사회변화의 의지를 확인시켜 줘야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지정학적 분단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모든 분단을 떨쳐버리고, 누구나 평등한 `사람이 먼저'인 세상의 기쁨을 만들어 주는, 새해에는 그런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놓치면 다시는 그런 세상은 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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