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의 향기, 버킷리스트 2
가을 끝자락의 향기, 버킷리스트 2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12.03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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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창문에 겨울 볕이 걸렸다. 햇볕이 꽉 찬 실내, 탁상달력에 비친 볕이 유달리 반짝거리는 날이다. 한 장남은 탁상달력을 들춰보며 꼼꼼하게 기록된 버킷리스트 목록에 동그라미 하나를 시크하게 그려놓곤 그날의 기억 고리를 잡아본다.

버킷리스트로 섬 여행을 했다. 울릉도여행 중 가이드와 동행을 하는 내내 여행보다 더 많은 긴긴 이야기를 거미줄처럼 뽑아냈다. 유달리 여행과 주옥같은 흘러간 노래를 즐겨 부르는 가이드, 소극적인 성향으로 친구들과 여행하기보다는 딸과 여행하는 일이 잦았단다. 늘 한길을 다니는 토끼처럼 그녀는 한 여행사를 선택하여 딸과 여행을 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만끽했다. 그러던 중 여행사대표가 그녀의 해박한 여행지식은 물론 변함없는 언행과 성실함을 보고 여행사 가이드로 채용을 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응원자가 조력자인 셈이었다.

최고의 직장은 즐기는 것이라 했듯, 뜻하지 않게 가이드로 취업을 한 그녀는 날개를 단 듯 창공으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제2의 인생길을 불꽃처럼 불태우는 가이드, 꽃이 아름다운 건 꽃을 받쳐주는 푸른 이파리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여행사대표는 그녀의 됨됨이를 이파리가 있어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알아본 것이다.

전업주부였던 그녀, 세상 밖의 일보다 오로지 가족들만 위해서 그저 밋밋한 생활에 젖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지나온 세월이었다. 결혼생활 이십 년이 넘어서면 사랑보다 정이 더 무섭다고 부부는 고락을 나누며 정으로 살면서 어쩌다 주말에 딸과 함께 여행하는 일이 전부였던 그녀다. 언제부터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권태기와 갱년기 그림자가 자꾸 짙어지고, 뒤돌아보니 그저 엄마이고 아내였지 여자가 아닌 삶을 무덤덤하게 살고 있더란다. 더 권태기, 갱년기는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며 세상을 박차고 가이드로 나온 그녀,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같은 시기에 만난 것이었다. 인생의 전환점 아니 돌파구의 실마리인 버킷리스트 목록을 이루는 나, 그녀는 가이드로 엄마가 아닌 나를 향해 달리는 것이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목록은 거창하지도 않다. 너무 평범해서 아니 쉽게 이룰 수 있기에 미루고 있던 거다. 두 달에 한 번 영화보기, 악기 배우기, 백두산 여행하기, 도예작품 만들기 등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나열한 것이 마흔 개나 된다. 히말라야 등반도 아닌 백두산등반,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영화관이 버킷리스트 목록에 있다니 괜스레 가슴 한복판에 찬바람이 일지만 이룰 수 있는 성취감은 배가 된다. 목록 중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기'는 볼 때마다 따스한 봄날처럼 마음을 설레게 한다.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으려 허리를 곧추세우려 하고, 빈 여백을 찾아 채우려 무진 애를 쓰기 때문이다.

토끼처럼 늘 외길을 다니는 사람에게 방향과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와 새로운 길을 도전 할 기회를 부여해 준 여행사 대표. 진정 그는 잠재된 능력을 이끌어내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멘토가 되어 인도하였으니 가이드의 삶의 여정이 빛나 보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 아니 더 많은 것을 품기보다는 외려 하나, 하나를 내려놓으러 온 여행, 설렘을 안고 자박자박 풀도 사위고 잎도 다진 낙엽을 밟으며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 본다. 삶의 애잔함을 간직한 풍경은 미지의 세계 속으로 안내하는 양 다양한 색채의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주렴처럼 흔들렸던 마음들, 가득 안고 가기보다는 내려놓은 것이 더 많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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