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인문학자 퇴계 이황
조선 최초 인문학자 퇴계 이황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8.11.2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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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퇴계 이황과 그의 제자 서애 류성룡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오래전 학부 때 2박3일 일정으로 답사한 바 있다. 고전문학 시간에 이황과 이이의 주리론과 주기론에 대해 토론할 때 이기 철학에 한참 고무된 적이 있다. 퇴계 사상은 수양 철학으로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여야 하는 입장 때문에 이(理)를 중시한 인물이다.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힌 중년의 나이에 다시 찾아가는 도산서원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세 시간 만에 도산서원에 도착하니 동행하며 도움을 줄 퇴계학문 전공자가 나와 있었다. 사전 조사한 자료와 그의 설명을 참고하며 분주하게 이동하는 가운데 퇴계가 9개월 동안 단양 군수로 재직할 때 묵객으로 대했다던 관기 두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향은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고 관기의 수양딸이 되었다. 시와 서예, 거문고에 능하고 미모도 출중했다. 18세의 두향과 곧기가 대나무 같았던 48세 퇴계의 운명적인 스토리는 가슴을 저몄다. 퇴계가 단양을 떠난 이후 두 사람은 20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1570년 퇴계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고 하였다니 두향에 대한 깊은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향 역시 퇴계의 부음을 듣고 사흘 밤낮을 걸어서 도산에 도착하지만, 먼발치에서 배향하고 돌아가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끊었다.

30년 세월의 벽을 허물고 묵객으로서의 정을 나누던 두 사람, 어쩌면 퇴계는 조선 시대 선진의식을 지닌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 올곧은 성품으로 나이 어린 두향의 지극한 존경을 받고 둘째 아들 사후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를 손수 재가시킨 사람이니 그 안에 인문정신이 없으면 불가한 일이다. 첫째 부인이 둘째 아들을 낳다가 세상을 뜨고 얼마 후 권질의 부탁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그의 딸을 재취로 맞는다. 권질 가문은 연산군의 모후 폐비 윤씨 사약문제로 연루되어 갑자사화 때 멸문지화를 당한다. 그 과정에서 권질의 딸이 조부의 사약 받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정신 이상이 되었다. 당시 서른 살의 퇴계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권씨 부인을 측은히 여겨 받아들인 점은 쉽지 않은 일이다. 퇴계는 권씨가 제사상에서 떨어진 배 한 덩이를 먹고 싶다며 치마폭에 감싸 안고 나가자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깎아주는 자상함도 지녔다.

여러 가지 정황을 미루어 볼 때 퇴계 이황은 조선 최초의 인문학자이다. 그는 유교 사상이 팽배한 시대에 남성주의 가부장제의 위엄을 벗고 삶 속 인문정신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 시대에 누구보다 진보적인 지식인이며 정치가였다. 관기 두향을 인격체로 대하고 홀로된 며느리의 앞날을 제안하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부인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던 그의 기저는 애민정신이며 인문정신이다.

말년에 벼슬을 사양하고 출세보다는 학문에 전진했던 군자, 심산유곡에 들어앉아 심신을 수양하고 자연을 벗 삼아 올곧게 살아간 그의 성정이 곳곳에 보인다. 두향이 퇴계에게 주었다던 매화는 그 대를 이어 무성한 가지를 이루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자연스럽게 몸 맡기며 멋스럽게 자란 나무들은 주인처럼 깊이 수양한 자태이다. 고즈넉한 도산서원 뜨락에 앉아 그의 시선으로 사방을 본다. 퇴계는 가고 없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 인향이 담벼락을 에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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