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고고한 연예
이토록 고고한 연예
  •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11.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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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에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집에만 있기에는 몸이 들썩인다. 이럴 때 무게감 있는 인문학보다는 가벼운 소설이 끌린다. 소설을 선택하는 기준은 즐거움과 주제, 스토리가 있는 책이다. 김탁환 소설가는 고전문학 전공의 대학교수에서 전업 작가가 되었고, 평소 눈여겨본 작가다.

도서`이토록 고고한 연예(김탁환 저. 북스피어)'는 오래전 이외수의 소설 `벽오금학도'를 읽었을 때의 몰입감이다. 모처럼 근사한 소설 읽는 재미를 만끽했다. 주인공 달문은 연암 박지원의 소설 `광문자전'에 나오는 광문의 다른 이름이다. 달문은 청계천 수표교 거지 패 왕초이며 광대였다. 정의로운 성품과 다재다능한 재주로 역사서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다.

저자는 매설가(소설가)가 꿈인 인삼가게 주인 모독의 눈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궁핍한 삶, 탐관오리의 횡포를 이겨내고자 노력한 달문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달문의 외모를 평가한 내용이 인상적이다.“광문은 외모가 추악하고, 말솜씨도 남을 감동시킬 만하지 못하며, 입이 커서 두 주먹이 들락날락했다.”

반면에 달문을 평생 사모했던 기생 운심은 달문을 이 나라 최고의 미남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바위처럼 불변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며 채워 나가는 거랍니다. 잘리거나 뽑힌 나무보다 잎을 피우고 가지를 뻗는 나무가 훨씬 아름다운 법이죠. 달문 오라버니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아름다움을 채워나가는 사내는 없어요.”

달문은 비루한 거지이며 광대였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평생 한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선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나타나는 `홍반장'이었다. 소설에는 간헐적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곁들인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활빈당의 활약,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들려준다. 저자의 고전문학 전공이 빛나는 순간이다.

달문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해 자칫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용서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그의 생애는 사람과의 관계, 믿음을 중요시하는 삶 자체였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반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고 희생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닮고 싶은 달문이다.

달문의 삶을 소개하며 저자는 말했다. “달문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시 만날지 확신하기 어렵다. 내 인생에 한없이 좋은 사람을 써야 한다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 뜨거운 촛불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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