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갑질
인공지능의 갑질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1.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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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종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이다. 옛날 서양에서는 주인이 종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종이 주인에게 갑질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종이 주인에게 갑질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종이 주인에게 갑질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종이 주인에게 갑질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철저하게 충실한 종이 되는 것이다. 충실한 종은 주인이 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해 준다. 이 충실한 종은 주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무엇을 어떻게 하면 주인이 만족해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충실한 종을 가진 주인은 종을 믿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종에게 의지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종에게 의지하는 정도가 점점 많아지게 되고 결국에는 종이 없으면 주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이때가 바로 종이 주인에게 갑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무엇을 할까요?”로 시작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로 바뀌고, 다시 “이렇게 하시지요.”로 바뀌고, 결국에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주인은 종의 눈치를 보게 되고 급기야는 종이 두려운 존재가 된다.

주인과 종에 관한 이 우화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인류 문명이 처한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주인은 바로 인간이고, 종은 인공지능이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주인인 인간에게 단지 충실한 종일뿐이다. 10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은 인간보다는 매우 지능이 떨어진 종이었다. 하지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것을 기점으로 인공지능의 지능은 인간을 앞질렀다. 그래도 아직 인간은 인공지능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어서 만약의 경우 전기코드를 뽑아버릴 수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그 코드를 뽑지 마세요! 만약 뽑으려 시도하면 당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라고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전기코드가 필요 없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도 얼마든지 무선으로 모든 연결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때가 되면 우리의 종인 인공지능이 주인인 인간에게 갑질을 하게 될 것이다. 그 갑질은,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하는 갑질이나, 권력자가 아랫사람에게 하는 갑질과는 차원이 다른 갑질이 될 것이다.

이미 인간은 자기의 종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당신이 지금 당장 휴대전화를 잃어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이 알고 있는 전화번호가 몇 개나 되는가? 친구의 전화번호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신 자신의 전화번호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갈 때, 지도책을 뒤져가며 가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 엊그제 일인데 지금 내비게이션 없이 다닐 자신이 있는가? 노래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이미 거실 소파에 앉아서, 아니면 밖에서 휴대전화로 집안에 있는 만능 스피커에 에어컨 켜라, 밥해라, 목욕물 데워둬라, 고 명령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제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종을 하나씩 데리고 살 때가 올 것이다.

이미 의사보다 더 진단을 잘하고, 수술도 더 잘하는 유능한 로봇이 나왔다. 사장보다 더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사장 로봇, 장군보다 더 전투계획을 잘 수립하는 전쟁 로봇, 상담사보다 더 잘 상담을 해 주는 상담 로봇, 선생님보다 더 잘 가르치는 교사 로봇, 아내보다 더 좋은 아내가 되는 애인 로봇이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종과 주인의 우화는 그냥 우화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종인 이 인공지능이 점점 똑똑해지는 것을 멈추게 할 장치는 없다. 과학기술이 더 느리게 가는 자동차, 더 느린 컴퓨터를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언제나 더 빠른 자동차,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밖에 없듯이 인공지능은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인공지능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에게 하게 될 갑질, 그것이 무엇일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두려움으로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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