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 샌드위치
불성 샌드위치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11.1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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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퇴임교수의 부탁으로 불교학생회를 맡았다. 많은 활동을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역사와 전통에 빛나게 원로선배들이 대거 참가해서 밥 사주고 술 사주는 참 좋은 동아리다. 얼마 전 동아리 행사를 통해 떠오른 단상이다.

그날따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불교학생회에서 시험기간이라 학생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누어주던 날이었다. 분위기를 띄우려고 동자승 꼴의 가장을 쓴 남학생도 연신 학생들 주위를 서성였다. 피자는 추첨으로 나누어주기도 했지만 막바지에는 불교 상식 OX 퀴즈로 나머지를 털었다. 그리고는 함께한 저녁이었다. 즐거운 한 때였다.

하나, 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도 백여 만 원어치의 음식을 젊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조계종 백년대계 본부의 지원 덕이지만 `보시'(布施)의 즐거움을 누려본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스님 곁에서 도와드리다가 뒤늦게 오신 교수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나만 누릴 수 없는 기쁨이기에.

둘, 불교 상식 퀴즈 꽤 까다롭더라. 일단 문제가 다 좋았다. 불교학생회의 숨은 능력이었다. 하다못해 나도 멀리서 들으면서 `부처님 엄마의 이름은 마하 부인이다'에 `O'를 했다. `마하'가 아니라 `마야'인데도. 어쩐지 학생이 `마하'의 `하'를 크게 외치더라. 대승(大乘)이라는 뜻의 `마하야나'(mahayana) 때문에 부인 이름까지 바꿀 뻔했다.

셋, 행사에 참여하신 스님께서 시월인데도 벌써 동안거(冬安居)를 준비하신단다. 속리산 중턱의 암자에서 홀로 겨울을 나려고 이것저것 마련하시는 모양이다. 사실 하안거(夏安居)가 인도 전통에는 맞는다. 걸어다니며 벌레들 죽일까 봐 하안거를 명했다.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자이나교는 걸을 때 빗자루질을 하면서 다닌다. 불교도 마찬가지 까닭에서다. 불살생, 비폭력, 아힘사는 같은 말이다. 내가 사는 것이 그 자체로 남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겹살은 돼지에게, 치맥은 닭에게, 곰국은 곰(?)에게 말이다. 동안거는 우리나라처럼 겨울이 추운 나라에서 스님을 살리고자 만든 제도다.

넷, 스님은 모기를 잡을까, 안 잡을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잡는 분도 있단다. 모기 때문에 수행에 방해가 되면 안 되어서 그럴까, 아니면 모기는 아수라왕 같은 악신을 불태워 생긴 재라서 그럴까? 자이나교도는 숨 쉬다가 벌레가 들어가 그 생명을 빼앗을까 봐 마스크를 하고, 책 넘기다가 벌레가 압사할까 봐 털 부채로 쓸어내면서 경전을 읽는데, 불교가 살생에는 좀 더 관대한가 보다. 그러나 스님은 모기를 잡으면서 축원은 꼭 해준단다.

다섯, 샌드위치를 나눠주시던 여교수님이 출가를 결심하셨단다. 놀라운 일이다. 학교에는 나보다 늦게 오신 분인데 명예퇴직하고 태국으로 떠나신단다. 단기 출가 과정에서 좀처럼 개방하지 않는 무문관(無門關) 하루 수행이 너무도 편하고 행복하셨단다. 스님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거긴데 대단하다. 밖을 닫고 안을 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마음 안의 크기는 마음 밖의 크기보다 참으로 크다. 조계종은 50세 나이 제한이 있다.

여섯, 동자승 탈을 쓴 학생이 고생이 많았다. 내가 장난삼아 머리를 두들겼다고 화내지 말길. 재밌는 이야기로 갚는다. 탈을 쓰면 동작이 커야 한다. 그래야 감정이 전달된다. 과장된 손짓과 발짓이 없으면 죽은 것 같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얼굴이 보여주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얼굴은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나누어준 샌드위치가 동동 떠오른다. 맛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바람 속에서 줄 서 있는 학생을 바라보니 건드릴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 조그만 불성이 아직은 꺼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콜라는 하나 먹었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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