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내리는 날의 풍경
겨울비 내리는 날의 풍경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8.11.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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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사진관에 갔다. 사진 찍기 전에 화장도 고치고 머리도 정리했다. 의자에 걸터앉아 어색하게 사진사를 바라보며, 시키는 대로 어깨도 바로 하고 고개도 살짝 돌리고 턱도 좀 올렸다. 펑펑 플래시가 터질 때 내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진사가 알아서 해줄 것이다. 몇 번 만에 `됐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촬영은 금방 끝났다.

사진사는 이제 디지털 기술로 얼굴 주름도 펴주고, 화장으로 가리지 못한 잡티도 지우고 미처 다듬지 못한 머리칼도 정리해줄 것이다. 살을 빼주기도 한다. 매장 안에 울리는 또닥또닥 클릭 소리와 함께 기대감이 상승한다. 매장 안을 서성이며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또는 혼자나 단체로 특별하게 기록된 표정들 하나하나를 감상하며 오늘 나의 표정은 어땠을까 너무도 궁금하다.

드디어 사진사가 프린터기에 종이를 넣고, 출력하고, 사진 크기에 맞게 또각또각 자르고, 조그만 증명사진 열 장을 작은 봉투에 넣어 건넸다. 계산을 위해 카드를 내밀고 나는 그제야 사진이 어떻게 나왔나 꺼내 보았다. 순간 정말 실망스럽다. 얼굴은 너무 동그랗고 표정은 어둡다.

“사진이 너무 흐려요.”

이 상황에서 바꿀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하며 내뱉은 한마디였다.

“진한 걸 좋아하시나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진사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컴퓨터를 다시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여기 머리칼을 덜 빗겨 주셨어요.”

“아, 잔머리가 너무 많으셔서.”

사실 부스스한 머리칼도 거슬렸지만, 눈을 좀 더 또렷하게 뜰 걸 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다. 사진사가 딱 내가 원하는 표정을 유도해주거나, 그런 순간을 포착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다시 찍겠다는 말은 못 했다.

새로 출력한 사진이 또각또각 크기에 맞게 잘린다. 그런데 사진사는 다른 인화지를 하나 빼서 프린트할 준비를 또다시 한다.

“계속 보니까 괜찮은데, 여러 번 하시게 했네요.”

사진은 내 생긴 그대로 나왔을 것이다. 오히려 컴퓨터 작업으로 더 젊게, 더 단정하게 변했을 것이다. 사진사는 시종 침착한 태도로 마지막에 출력한 것은 좋은 인화지에 진하게 뽑았다며 세 개의 봉투 중에 어떤 것인지 재차 확인해줬다. 나는 30장의 증명사진과 미안함과 가시지 않는 아쉬움을 가지고 가게를 나왔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을 걷는 동안 임대 딱지가 붙은 매장이 여러 곳 보였다. 한때 충주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이었던 곳인데 새로 생긴 상권에 왕좌를 내놓았다. 게다가 침체한 현재 경제 상황까지 겹쳐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 흥성하면 오래된 것이 쇠퇴한다. 성쇠의 짧은 리듬을 생각하며 심란한데, 부슬부슬 겨울을 재촉하는 비까지 내리는 소슬한 골목에 손님을 기다리는 창백한 불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와이퍼가 열심히 닦아도 시야가 갑갑하였다. 비에 젖은 모든 물체에서 빛이 반사되니 평소보다 훨씬 번잡스럽게 느껴지는데, 늘어선 차량 사이사이에서 시커먼 물체가 갑자기 휙 나타나고 재빨리 사라졌다. 배달 오토바이다. 짧은 길목을 지나는 동안 연이어 3개의 오토바이를 보았다. 예전 같으면 번잡한 교통에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를 책하고 싶었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비 오는 날엔 밖에 나가기가 번거로워 배달 주문이 더 많아질 것이다. 누군가 집에서 편하게 먹기 위해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이나 낮이나, 오늘도 내일도 수고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뭉클한 마음이 생겼다.

안전을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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