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가는 밥상
뒤로 가는 밥상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8.11.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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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된 길의 연속이다. 일 년 중 시월 한 달은 시간이 촘촘하다. 주말마다 챙겨야 할 애경사와 외부 행사도 중요하지만 저장 반찬 만드는 일로 동동거려야 한다.

단풍들기 시작하면 들깨도 여물고 잎은 노르스름해진다. 이때쯤 잎을 따서 소금물에 삭혀야 한다. 이어서 서리 내리기 전에 풋고추를 딴다. 약이 오른 것은 지고추로 삭히고 덜 매운 것은 고추부각을 만든다. 지고추의 쓰임은 다양하다. 동치미 담글 때 넣고 고추장 넣고 무쳐도 좋고 무엇보다 만두소재료로 그만이라 삭혀야 할 양도 만만치 않다. 고추부각을 만들려면 일주일의 시간이 소비된다. 고추부각이 마무리 되면 삭혀 놓은 깻잎을 씻어 물기를 말리고 한장 한장 펴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양념장을 부어야 한다. 해종일 해야 한다. 아무리 많이 만든 고추부각도, 깻잎 김치도 동기간들에게 나누어 주다 보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고추장 담그는 일이 끝나면 시월이 간다. 그렇다고 미틈달이 편안한 건 아니다. 김장과 메주 쑤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김장 끝나고 나면 남은 무를 소금에 절여 놨다가 고추장장아찌도 담가야 한다.

일에 매여 있는 나를 보고 식구들은 조금씩 대충하라고 한다. 없으면 사서 먹으면 될 일을 힘겹게 한다고 타박도 한다. 밥하는 일도 귀찮으면 외식하잖다. 고전전인 사고방식을 버리라고 하면서 어쩌다 포장 음식을 내놓으면 두어 번 숟가락을 댔다가 저만큼 밀어놓고 된장찌개나 순두부를 다시 끓여달라고 주문하기 일쑤다.

시루에 콩을 안쳐 콩나물을 길러 먹던 일, 집에서 맷돌에 콩을 갈아 두부 만들던 일은 아주 먼 얘기가 되었다. 이젠 김장하는 일도, 고추장이나 된장 담그는 일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저장 반찬 만드는 일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대량 생산하는 것을 사서 먹는 가정이 많다. 뒤로 밀려나는 것들을 붙잡고 있는 내가 미련한지도 모른다.

어릴 적, 간식은 메뚜기볶음과 동네 아주머니가 다니던 제사공장에서 얻어다 주는 번데기였다. 혐오감도 없이 고소한 맛에 길들여졌다. 지금도 메뚜기에는 선득 손이 가지 않아도 누에 번데기는 잘 먹는다. 오죽하면 가족이 국내여행을 가면 제일 먼저 사주는 게 번데기고 식당 밥을 먹을 때 밥상 위에 번데기가 놓여 있으면 당연하게 내 앞으로 밀어주고 접시가 비기 무섭게 주문해 준다. 식구들은 아무도 안 먹고 혼자만 먹는다.

민망한 먹거리가 친환경적인 미래식량으로 뜨고 있다. 맛보다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칼슘과 철, 아연 등 무기질 함량이 높아 식량난 해결에 곤충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한다. 과거 즐기던 먹거리가 현재는 혐오 식품으로 밀려나 있지만, 미래의 소중한 식량자원이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내가 만드는 저장 식품은 소금함량이 높아 만병의 근원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짭짭해서 밥도 더 먹게 되니 탄수화물 섭취도 늘 수밖에 없어 답변할 말이 없다. 인스턴트 음식보다는 났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밥상으로 밀려나는 중이지만 곤충식량시대가 지나면 다시 미래의 음식으로 화려하게 부활할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도 외식하는 횟수가 늘었다. 먹고 나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말을 하는 것도 똑같이 늘어간다. 무언가 허전하고 돌아서면 지불한 밥값이 아까워, 될 수 있으면 집 밥을 먹자고 한다. 집에 와서 하는 일도 똑같다. 집 밥을 조금이라도 먹는 일이다. 그날은 쥐코밥상이어도 불평이 없으니 아직은 뒤로 가는 밥상이 아니라서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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