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풍경을 담은 김기찬
골목풍경을 담은 김기찬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8.10.31 1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가를 말하다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골목도 하나의 문화유산이지요. 가난이 죄가 아니니 그 삶 또한 순수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크게 즐거울 것도 없으니 이 모두가 우리의 골목문화라 해야겠지요.”

사진작업을 시작한 처음부터 골목 사진만 찍은 김기찬의 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서울 무악재 고개 넘어 공릉서 문산 쪽으로 얼마간 더 떨어진 시골 외가에 자주 갔었다.

사형제 중 셋째인 아버지가 외가에서 장녀인 어머니와 결혼한 사이에서 집안의 장손으로, 또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일본에 유학하여 취미로 사진을 배워온 그의 아버지가 식구들을 사진 찍어주는 모습을 보며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학생 때 넉넉했던 외가의 도움을 받아 친구들을 사진 찍어 현상과 인화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 무렵 월북작가 이태준의 순수문학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기영의 프로레탈리아문학 `고향'을 탐독하며 차츰 고향이라는 소박함과, 그리움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그는 고교생이었던 1956년쯤 아버지가 번역해준 일본 영화, 연극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감독의 꿈을 가졌다. 대학 연극영화과에서 16mm 영사기로 미도파 등 영상촬영을 한 인연으로 KBS-TV 개국준비 때 한동안 일하기도 했다.

1964년 가을 병역을 마치고 TBC-TV 영화부에 입사하여 영상카메라맨으로 근무할 때 중고 카메라 한 대를 구입했다. 그러다가 그의 사진작업에 깊은 관심이 있던 김행오(당시 영화부장)에게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브루스데이비드슨의 `뉴욕', 유진 스미스의 `시골의사와 피츠버그'로버트 카파의 `헝가리고아', 뉴욕과 미국을 찍은 데이비드 세이무어와 로버트 프랭크,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작품과 그 외 많은 촌락사진을 받아 보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들 책을 열심히 읽고, 사진들을 머릿속에 새긴 그는 먼저 서울력, 염천교 주변 행상들을 찍고 다닌 지 몇 년 후부터 그들의 주거지가 궁금하여 골목을 찾게 되었고 자연스레 긴 골목 사진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의 눈에 어느 순간 서울 중림동 골목이 들어왔다. 중림동의 다방, 이발관, 미용실, 쌀가게, 그리고 그곳 사람들 모두가 정겨워 보였고 반가웠다.

손수레 한 대 지나가기도 어려운 꼬불꼬불한 골목에서 아이들은 간혹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천진난만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가난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골목 안 처녀 총각 사이에 사랑이 싹터 한 가정을 이루고, 이웃 간에 술 한잔을 놓고 어려움을 나누는 인정이 있어 그들은 결코 불쌍하거나 추해 보이지 않았다.

중림동 골목을 드나들기 시작했던 처음에는 주민들이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초리가 선연했고 마음 또한 부드럽지 않았으나 차츰 허름한 구멍가게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동네 어른들이 어느새 그와 한집안 식구가 되었다.

1988년 중림동 사람들을 소재로 첫 번째 사진전을 열었고 전시장에 중림동 주민들을 초대했다. 중림동 외에도 행당동, 공덕동, 도화동, 문래동, 아현동, 사근동, 효창동, 도원동, 영천, 천호동, 행촌동, 답십리, 수색 등 골목을 40년 가까이 닥치는 대로 필름에 담았다.

2000년부터 옛 중림동 사람들을 찾아 변화한 모습을 찍고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날 전시장은 눈물과 회한, 감사의 분위기가 흘렀다고 한다. 오랫동안 골목 사진을 찍으면서 어느 한순간도 그 일을 멈출 수 없었다는 그는 오직 그들 속에 한가족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찍었고 밤새워 작업했다. 그의 `골목 안 풍경'은 일순간의 반짝이는 재치나 정열, 숙련된 기법의 사진이 아닌, 인간이 그 무엇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깊은맛이 스며 있는 사진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