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10.1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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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88서울올림픽으로 전국이 들떠 있을 때였습니다. TV 가요프로에 콧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내가 벙거지 모자를 쓰고 나와 `울고 싶어라'라는 노래를 절규하듯 열창해 주목을 받았지요. `담배, 아예 배우지 마세요'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2010년 초에 폐암으로 세상을 등진 이남이(본명 이창남)였습니다.

그의 노래 `울고 싶어라'는 전파를 타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쳤고, 그의 대표곡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사랑은 가고 친구도 가고 모두 다/ 왜 가야만 하니 왜 가야만 하니 왜 가니/ 수많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 잊었니/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거야/ 떠나보면 알거야 아마 알 거야/…….' 군부의 힘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초록이 동색인 노태우 정권이 직선 대통령이 되었지만, 올림픽 개최로 나라의 위상과 국민의식은 한 단계 높아졌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방황하던 민초들이 이남이가 `사랑도 가고 친구도 가버렸다고,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거야'라고 절규하니 감전될 수밖에요. 필자 또한 그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땐 눈물 없는 그저 울고 싶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고 살림살이도 낳아져 살만한데 이상하게도 요즘 눈물이 부쩍 늘었습니다. 딱히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훔치기 일쑤입니다. 이산가족 상봉광경은 물론 아시안게임에서 남북단일팀이 선전하는 모습과 작별하는 모습에도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리운 친구가 생각나도 눈물이 나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도 눈물이 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서산에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어도 눈물이 나고, 꽃잎이 떨어지거나 낙엽이 바람에 날려도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허나 눈물이 나야 할 때 눈물이 나지 않아서, 펑펑 울고 싶은데도 울음이 기어들어가서 야속한 때도 있었습니다. 1982년 56세 일기로 급서한 아버님 장례 때가 그랬습니다. 비보를 받고 달려온 동생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정작 장남인 저는 울지 못했습니다. 장례를 어떻게 치르고 또 어린 동생들을 어떻게 건사하며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 울 겨를이 없어서였습니다.

유산은커녕 중학교 다니는 막내 여동생과 고등학교 다니는 여섯째, 대학교 다니는 다섯째, 직장이 변변찮은 넷째를 대책 없이 남겨놓고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님이 어머님을 대동하고 충주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큰아들네 집에 오셨다가 그리된 겁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아내가 산통이 있어 산부인과 병원에 입원했고, 이튿날 새벽 장손이 태어나 몹시 기뻐하시다가 3시간 후에 별세하셨는데, 어머니로부터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아내와 아이를 장모님께 맡기고 집으로 달려가 그 길로 장례를 치러야 했으니까요.

삼우제를 지낸 후 목욕을 하고 처가로 가서 아내와 아들을 상면했는데 아내가 나를 보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아내를 부둥켜안고 한동안 오열했습니다.

그 후로 내 눈물샘은 나날이 메말라 갔습니다. 세파에 시달려 가슴 속은 울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는, 마음은 울컥한 데 입에서는 울음이 나지 않는 그런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헌데 60고개를 넘으니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울음이 납니다. 글을 쓰다가 가슴 시린 인연이 떠오르면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하고 심할 땐 서재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한참 울다 보면 마음이 정제되고 편안해 집니다. 울고 싶은 계절입니다.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우세요. 함께 울어 줄테니.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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