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95>
궁보무사 <29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3.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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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제상 위에다 이게 무슨 짓이오'
23.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도저히 참다못한 감물미녀는 자기 시녀에게 사리성주가 밖에 나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가지고 오도록 또 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시녀의 말에 의하면 사리 성주는 낮에 예쁜 소녀들과 더불어 꽃이 만발한 산을 이리저리 사슴처럼 뛰어다니며 놀다가 밤에는 시원한 물소리를 내가며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에서 예쁜 소녀들이랑 벌거벗고 목욕을 함께 즐긴다는 것이었다.

감물미녀는 이제 화가 날대로 났다.

'이 자식! 도대체 날 무슨 취급을 하는 거야 아무리 내가 촌년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뭐 밸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화조차 낼 줄 모르는 무지랭이 여자인 줄로 아나 제까짓 놈이 성주면 다야 나에게 겨우 이런 대접을 해주려고 애매한 사람들을 세작으로 몰아 고통을 주고 쫓아냈단 말야 에잇! 더럽고 치사한 놈! 퉤퉤퉤!'

감물미녀는 너무나 화가 나서 뜨거운 숯불을 가득 담은 화로가 바닥에 엎어지듯 자기 머리통이 뜨겁다 못 해 그대로 터져서 머리가 확확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도 식히고 바람도 좀 쏘일 겸해서 시녀 두어 명을 데리고 가까운 근처 동산을 찾아갔다.

"너희들은 잠깐 여기서 기다리려무나. 내 저기 잠깐 가서 볼일 좀 보고 오려마."

감물미녀는 마침 눈앞에 보이는 조그만 동굴을 보고 시녀들에게 이렇게 이른 뒤 저 혼자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시녀들은 그녀가 잠시 무슨 생리적인 것을 몰래 해결하려는 줄로 알고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

감물미녀는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우선 급한 볼일부터 간단히 처리하고 난 다음 가슴속에 짓눌린 응어리가 다 풀릴 때까지 맘껏 울거나 싸가지없는 자기 남편 사리 성주를 향해 저주를 해대고 욕을 실컷 퍼부어 볼 작정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 가슴 속에 맺혀있는 한과 설움이 풀어지지 않아 자칫하다간 화병으로 도져서 죽을 것만 같은 섬뜩한 기분이 그녀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 감물미녀는 동굴 안이 생각보다 넓고 어디서 빛이 들어오는지 의외로 밝다는 걸 알아채고 흠칫 놀랐다.

그러나 우선 급한 볼일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감물미녀는 얼른 치마를 들어 올리고 허연 엉덩이를 밖으로 드러낸 채 쪼그리고 앉아서 시원한 물줄기를 쭉 뽑아내었다.

바로 이때였다.

"어허! 남의 제상(祭床) 위에다 이게 무슨 짓이요. 여기가 댁의 뒷간인 줄로 아오"

사금파리가 깨지듯이 들려오는 탁하고 둔한 목소리에 감물미녀는 깜짝 놀라 후다닥 치마를 아래로 내리면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바로 그녀 앞에는 어떤 떠꺼머리총각 한 녀석이 두 팔짱을 낀 채 떠억 버티고 서있었다.

그녀가 그제야 정신을 차려 자세히 한 번 살펴보니 방금 전 자기가 오줌 빨을 정확하게 날렸던 바로 그곳 널찍한 돌판 위에는 정성껏 차려놓은 음식들이 있었는데, 거의 모두가 굽고 말리고 삶아놓은 짐승 고기들이었다.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 젊은 사내놈은 감물미녀앞으로 좀 더 바짝 다가오며 몹시 화가 난 듯 계속 지껄여댔다.

"댁이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그렇지,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드려가지고 차린 제상인데."

순간 두 남녀의 시선이 맞부딪혀졌다.

"으흐응"

"어머머!"

두 사람은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자마자 동시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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