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약
가장 좋은 약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8.10.09 2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처방받은 약봉지를 무심코 들여다본다. `가장 좋은 약은 마음의 즐거움이다.'라는 글귀가 눈에 콕 박혀 버렸다. 증세에 따라 의사의 처방대로 받아온 약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약국의 재치가 돋보였던 것이다. 보고 또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면 봉지 안에 담긴 약의 내용보다도 은근한 효과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에.

나이가 들면서 먹게 되는 약의 가짓수도 늘어났다. 그래도 호전을 위해 불편을 마다치 않고 열심히 챙기는 편이다. 기계도 오래 쓰면 당연히 닳아지고 고장이 있는 법, 사람이야말로 오죽하겠는가. 그 밖에 몸의 약해진 기능을 꼽으라면 복잡하다. 아무튼, 살피고 챙기는 일에 이제는 소홀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지금 내게 가장 좋은 약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입가에 미소를 절로 피어나게 하는 손녀딸들이다. 꼬물꼬물 자라나더니 이젠 제법 말도 잘한다. 할머니라는 부름을 받으면서 인생의 전환기에 다다랐다고나 할까. 깊게 생각해보니 내 삶의 종착역이 가까워 오는 돌아봄의 시간이었다.

정말 좋은 약은 마음의 즐거움인 것 같다. 때로 우울함에 빠져들다가도 손녀딸들의 얼굴을 마주하면 언제였느냐는 듯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만날수록 좋고 행복지수는 높아져 간다. 한편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지상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한동안 뜸하면 안달이 난다. 아직은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까 볼 기회가 많은 편이다. 이제 점점 자라나면 당연히 만날 기회는 줄어들 터, 그때도 아이들이 천진하게 내 곁을 다가올지 사실 염려스럽다. 그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갈수록 고독의 빈도는 늘어갈 게 뻔하다. 마음의 즐거움, 그것을 위해 이제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언제 이토록 빠른 세월이었는지 놀랍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즐거운 마음의 약을 취하며 살아왔을까 돌아본다.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던 것 같다. 새삼 지금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크고 많은 것을 바라기보다 이렇게 소소함에서 누리는 행복이 진정 내 것인 것만 같아서다. 생각해보니 매사가 감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았다.

전과 달리 세상의 이치가 모두 스승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너무 단순하게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태도가 행여 시대에 뒤처질지언정 급한 걸음을 하고 싶지는 않다. 건강을 위해 취해야 할 물리적인 약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약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마음의 즐거움이라면 날마다 나 자신을 긍정의 방향으로 환기시키는 일에 애쓰며 살아가려 한다.

가장 좋은 약을 놓치고 싶지가 않다. 나는 그 약을 취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본분을 다하는 중이다. 때에 따라 피고 지는 꽃처럼 우리네 인생사에도 그런 모습의 이야기들이 하루하루를 엮어가고 있을 줄 짐작한다. 마음의 즐거움, 앞으로도 삶 속에서 그것이 또 어떤 모양으로 나를 지켜줄지 짚어보는 순간이다. 더한다면 나도 가족과 타인에게까지 좋은 약으로 쓰임 받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