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무게
지구의 무게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0.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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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종이를 한 장 꺼내서 큼직한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보자. 그리고 그 동그라미 가장자리 꼭대기에서 바깥쪽으로 한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보자. 동그라미를 지구라 하고 사람을 당신이라 해 보자. 그러면 당신은 지금 지구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 발바닥이 눌리는 것을 느껴 보아라. 발바닥이 눌리고 있는가? 그렇다. 당신 발바닥은 지구를 누르고 있다. 왜? 그것은 지구가 당신을 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중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중력, 중력 때문에 지구가 당신을 끌어당기고 그래서 당신 발바닥이 지구를 누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구도 당신 발바닥을 누르고 있다. 지구가 당신 발바닥을 누르는 것이 느껴지는가? 안 느껴진다고? 그러면 종이를 180도 돌려 보아라. 이제 지구가 위에 있고 당신은 아래에 있다. 처음에 당신은 대한민국에 있다가 지금은 미국에 왔다고 생각하자. 이때도 당신 발바닥이 눌릴까? 당연히 눌려야 한다. 당신이 미국에 간다고 발바닥이 안 눌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무엇이 당신 발바닥을 누르는가? 당연히 당신 발바닥 위에 있는 지구가 누르는 것이다! 당신이 땅에 서 있다는 것은 당신이 지구를 발바닥에 올려놓고 지구를 들고 있다는 말이 된다. 당신이 땅에서 걸어간다는 것은 당신이 지구를 발바닥에 올려놓고 뱅글뱅글 돌리고 있는 것이다. 장난 치냐고? 아니다. 나는 지금 지극히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중이다.

당신 발이 눌리는 현상은 당신과 지구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중력)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지구만 당신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당신도 지구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리고 지구가 당신을 끌어당기는 힘만큼 아주 정확하게 같은 힘만큼 당신도 지구를 끌어당기고 있다. 이런 현상을 물리학에서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어려운 말로 하지만 우리 조상은 이미 오래전에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거나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도 있다.”는 말로 작용반작용을 쉽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과 지구가 서로 누르는 무게는 얼마나 될까? 가만히 느껴 보아라. 그 무게를! 안 느껴진다고? 그러면 당신과 지구 사이에 체중계를 가져다 놓아 보아라. 눈금이 얼마를 가리키는가? 이 눈금이 바로 당신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이 눈금이 당신이 지구를 당기는 힘이자 지구가 당신을 당기는 힘이다. 지구가 당신을 당기는 힘, 그것이 바로 당신 체중이다. 당신의 체중은 당신이 지구를 당기는 힘이기도 하다. 당신이 지구를 당기는 힘이니 그것은 지구의 체중이 되기도 한다. “아니, 뭐, 지구의 체중이 내 체중과 같다고?” 놀라워하지 말자.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지구의 무게는 정확히 당신 몸무게와 같다! “아니 내 몸무게와 지구 무게가 같다고? 그러면 개미가 보면 지구 무게는 개미 무게가 되냐?” 맞다. 개미에게 지구 무게는 개미 무게와 같다. 말도 안 되는 궤변같지만 물리학적으로 정확히 맞는 말이다. 지구가 그렇게 무겁다면 지구가 우주에 어떻게 둥둥 떠 있을 수 있을까? 우주에 둥둥 떠 있는 지구는 무게가 없다. 마치 인공위성 속은 무중력 상태여서 모든 물체의 무게가 사라지 듯이 말이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자기 쪽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보인다. 입장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처지에서만 보는 것으로 과학을 할 수는 없다. 상대성 이론도 이러한 입장 바꾸기의 결과이다. 저 사람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면 저 사람도 나를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온갖 갈등도 이렇게 입장을 바꿔 보기만 해도 많은 것이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사는 이 엄청난 지구, 그러나 지구는 가볍다. 지구가 이렇게 가벼운데 세상에 무거운 게 뭐가 있을까? 무거운 우리의 인생, 이 무거운 인생도 입장만 바꾸면 엄청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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