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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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9.2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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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사람의 평균 수명은 각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조사해 평균을 내면 된다. 이것은 개인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개인의 태어남과 죽음을 관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인간의 평균 수명을 알 수 있을까?

여기 바퀴벌레 집단이 있다고 하자. 이 바퀴벌레 집단의 평균수명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각각의 바퀴벌레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는지 조사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이런 경우 개개 바퀴벌레를 관찰하지 않고도 알아내는 방법이 존재한다.

바퀴벌레가 1000마리 있다고 하자. 하루를 바퀴벌레 나이로 1살이라고 하자. 이 바퀴벌레는 나이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갓 태어난 것에서부터 수명이 거의 다 된 것에까지 다양할 것이다. 이 바퀴벌레 집단을 관찰해 보았더니 50일이 지나자 500마리로 줄어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 바퀴벌레의 수명은 얼마라고 보면 될까?

평균수명이 60년인 인간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있는 사람 1000명 중에서 60년 뒤에 살아남아 있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내일 당장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60년 뒤에 죽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드물게는 100년 뒤에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150년 뒤에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균수명이란 이 모든 경우를 평균한 수명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균보다 오래 살 사람과 평균보다 일찍 죽을 사람이 엇비슷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평균수명이 60년인 인간은 60년 뒤에 대략 500명 정도 살아남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을 반감기로 말하면 인간의 반감기는 60년이다. 반감기가 곧 평균수명이다.

이제 바퀴벌레로 돌아가 보자. 바퀴벌레 1000마리가 50일 뒤에 500마리만 살아남았으니 바퀴벌레의 평균수명은 당연히 50일이다. 그러면 100일 뒤에는 바퀴벌레가 몇 마리 남아 있을까? 250마리다. 150일 뒤에는 125마리, 이렇게 한 반감기가 지날 때마다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물론 이런 논의는 바퀴벌레가 새끼를 까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하는 것이니 실제 바퀴벌레에는 적용되기가 어렵다.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물질에는 반감기가 있다. 어떤 것은 아주 짧고 어떤 것은 아주 길다. 이들 입자는 개별적으로 관찰할 수는 없고 수많은 입자를 통계적으로 조사하는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이들의 수명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반감기를 측정하게 된다. 소립자들 중에는 반감기가 0.0000000001초 정도로 짧은 것도 있지만 전자나 양성자와 같이 우주의 나이(보다 반감기가 긴 것도 있다.

방사능 물질은 우리 생활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의료분야인데 인체 검사를 위해서 많이 사용되는데 PET(양성자단층촬영)가 그 한 예다. 의료분야에서 사용하는 방사능 물질은 반감기가 매우 중요하다. 방사능 물질은 인체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암 검진 등에 사용하는 방사능 물질은 주로 반감기가 짧은 방사능 물질을 사용한다. 지르코늄 89와 같이 암 검진에 많이 사용되는 방사능 물질은 반감기가 대략 3일 정도이다. 하지만 원자로나 원자탄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인 요오드(8년)나 세슘(30년)은 반감기가 매우 길어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방사능의 반감기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하기도 한다. 지질학이나 고고학에서 반감기는 5,730년인 탄소동위원소를 사용하여 연대를 측정한다. 이 동위원소가 존재하는 비율이 자연 상태일 때의 반이면 5,730년 반의반이면 11,460년, 그것의 또 반이면 17,190년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존재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우주조차도 죽음을 맞이할 숙명이다. 그 옛날 로마의 개선장군을 따라가며 외쳤다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죽음을 망각하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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