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엔트로피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9.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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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만물은 변한다. 변화, 이것은 자연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 아닐까?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생명현상이다. 변하지 않는 생명이 어디 있는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생로병사가 바로 변화다. 생명체만 변하는 게 아니다.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너럭바위도 바람에 깎이고 빗물에 닳는다. 땅도 하늘도 우주도 변한다.

그런데 왜 만물은 변할까? 공기는 왜 가만히 있지 않고 흘러서 바람을 일으키는가? 태양은 왜 저렇게 강력한 빛을 사방으로 뿜어낼까? 지진은 왜 일어나고, 파도는 왜 치는가? 왜 식품은 상하고, 뜨거운 물체는 왜 식는가? 왜 우리는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

모든 것이 변하되 변화에는 방향성이 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 그 반대로 흐르지는 않는다. 열은 온도가 높은 것에서 낮은 것으로 흐르고,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른다. 절대로 그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이 다 엔트로피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비평형 상태에서 평형상태로 가는 과정이다. 우주 최초의 비평형은 `빅뱅'이다. 태초의 대폭발, 이것은 비평형이 극에 달한 순간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 지극한 비평형이 있었기에 이 우주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우주는 태초의 이 비평형을 줄여가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별이 생기고 태양, 지구, 달이 생기고, 생명체가 생겨난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바람이 왜 부는가? 고기압과 저기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평형 상태다. 고기압은 낮아져야 하고 저기압은 높아져야 한다. 그래서 고기압 쪽에서 저기압 쪽으로 공기가 이동하게 된다. 이것이 바람이다. 열은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 쪽으로 흐른다. 그래서 온도가 높은 물체 온도는 낮아지고 낮은 물체 온도는 높아진다. 모두가 평형 상태로 가려는 현상이다. 평형상태를 엔트로피가 높다고 하고, 비평형인 상태를 엔트로피가 낮다고 한다. 따라서 자연은 언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

자연에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를 생각해 보자. 경제활동이란 재화가 부자에서 가난한 자 쪽으로 흐르는 현상이다. 부자의 돈이 가난한 자에게로 흐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구에 바람이 불어야 하듯이 국가에도 돈이 흘러야 한다. 이 흐름이 바로 경제활동이다.

고기압은 낮아지고 저기압은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고기압과 저기압이 같아지면 큰일이다. 공기의 이동이 멈추기 때문이다. 태양이 쉼 없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지구가 자전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고기압과 저기압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바람이 불고, 공기가 정화된다. 마찬가지로 부자의 돈이 가난한 자 쪽으로 흘러야 한다. 하지만 부자가 없어지면 큰일이다. 태양이 지구에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서 고기압과 저기압이 유지되도록 하듯이 지도자는 지속적으로 국가의 부가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지구에 바람이 불듯이 나라의 경제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분배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일이라면, 부의 창출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일이다. 가만히 두면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다른 작용이 없다면 결국에는 완전한 평형상태가 되고 만다. 완전한 평형상태는 죽음이다. 태양이 없다면 지구의 기압은 완전한 평형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지구, 그것은 지구의 죽음이다.

태양이 지구의 엔트로피를 감소시켜서 바람이 그치지 않게 하듯이, 위정자도 나라의 엔트로피를 감소시켜서 돈이 흐르게 해야 한다. 자연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인간의 활동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 인류의 문명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킨 결과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라!'고 할 때, 물리학자는 `엔트로피를 줄여라(reduce entropy)!'고 말한다.

한 때 우리나라에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엔트로피를 줄여라'는 말이 참 엔트로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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