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미스터 션샤인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09.20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신미양요(1871년)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라는 소개가 붙은 `미스터 션샤인'이 막바지 숨을 고르면서 종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말 밤마다 TV 앞을 떠나지 못하고 지낸 3개월의 시간이 햇빛 듬뿍 받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반짝거리는군요. 등장인물 가운데 사대부집 영애였던 고애신(김태리 분)이 즐겨 쓰던 `귀하(貴下)'라는 인칭대명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높여 이름 대신 가리키는 말로 쓰는 것인데, 그 말 한마디가 주는 울림은 자못 컸습니다.

아직 잘 알지 못할 때도 `귀하'였지만, 알게 됐어도 `귀하'로 불린다는 것은 신비로운 느낌이겠다는 생각을 끝내 멈출 수 없더군요. 마음에 품고 있는 이가 지금 눈앞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요?

“귀하에게 러브(love)의 순서를 알려주리다. 먼저는 통성명을 하오. 그리곤 악수와 허그(hug)와 그리움과 꽃구경과 낚시라오.”

“귀하는 고귀하고 위대한 사람이오.”

“귀하의 얽이가 성공하길 바라오.”

“귀하가 괜찮았으면 좋겠소.”

“귀하 또한 같은 생각이구려.”

“귀하가 보고 싶었소.”

“귀하에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오.”

“귀하 덕분에 나는 잠깐 수줍고, 오랫동안 행복하오.”

“귀하가 올 만한 곳에 나는 계속 서 있는 중이오.”

“귀하 때문에 울 뻔 하였는데, 다행히 웃었소.”

“귀하는 낙담하지 마시오. 늘 길은 있소.”

“귀하는 오늘도 고맙소.”

“귀하와 함께 정들었고, 자주 웃었소.”

드라마에 나온 몇 가지 소품들은 어떤 단초(端初)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진 초이(이병헌 분)와 고애신 사이에서 우체통 역할을 했던 한약방의 어성초(魚腥草) 서랍도 그러했고, 둘이 서로 만날 일이 있다는 신호였던 붉은색 바람개비도 그러했고, 유진 초이가 고애신에게 선물했던 영국의 전통민요 `그린슬리브스(Greensleeves)'가 울려 퍼지는 오르골도 그러했고, 유진 초이가 작은 보자기에 고이 싸놓았던 나무 비녀와 노리개도 그러했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다가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적이 여러 번입니다.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새드 엔딩(sad ending)' 같군요. 누구나 축하를 받으며 기쁘게 태어났다가 마지막엔 눈물로 배웅 받는 의식을 치르게 되니까요.

사람마다 받게 되는 희노애락의 양이 다른 것 같아요. 누구에겐 희락(喜)의 일이 많으나, 누구에겐 노애(怒哀)의 일이 많을 테니까요.

아직 드라마의 끝맺음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바람은 있습니다. 당신의 존재로 눈이 멀어도 가당하니, 부디 `햇빛씨(Mr. Sunshine)'가 되어달라는 겁니다.

/에세이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