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온도를 높이는 일
생존 온도를 높이는 일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8.09.1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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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인강을 들으면서 설거지를 하는데 잠시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어 수돗물을 잠그고 경청했다. 장자와 노자 강의로 명성 높은 철학자 최진석 교수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지식 수입국이 아니라 지식 생산국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식을 확장하는 이유는 생존 온도를 높이는 일이며 내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라는 부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자처럼 새로운 길을 내는 창의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시만큼 창의성을 키우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시 쓰기는 이질성에서 동질성을 발견하는 은유적 과정이니 충분히 공감할 부분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각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행위이니 세상 모두를 주체로 세우는 따뜻한 작업이다.

한 달 전 시립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백일장 작품을 심사하느라 다녀온 적이 있다. 초등부에서 일반부까지 참가하는 시민 행사이다. 장르는 운문과 표어인데 무더운 여름 날씨를 감안하면 낮은 편수는 아니다. 학교에서 독서논술과 글짓기를 지도하는 일에 있다 보니 작품을 신중하게 감상한다. 시를 감상하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다. 주어진 시제에 맞게 생각하느라 잠시 세상 읽기로 고민했을 그들의 예쁜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일단 원고지 사용법과 띄어쓰기, 맞춤법은 뒤로하고 얼마나 새롭게 보았는지 입체적 사고와 은유에 중심을 두었다. `우리가 시를 쓰는 목적은 무엇일까.' 삶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시를 쓰는 일이 기관을 통해서만 치러지는 행사가 되지 말고 학교 내 인문 교양 시간으로 들어와 필수 선결 과목으로 지정된다면 제도권 교육 여건상 부족한 인문적 사고는 저절로 향상될 것이다. 물질적 가치를 떠나 정신적 가치 향연으로도 충분히 삶의 온도는 높아진다.

좋은 시를 읽고 오래 감상하다 보면 자신에게로 향한 시야가 세계로 확장된다. 자연히 나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자 중심적 사고의 확장은 물론 우주 공동체적 심상으로 확장된다. 살면서 大小 先後(대소 선후)를 아는 일 그것이 정말 道(도)에 이르는 길임을 실감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 뿌리만큼 무성한 잎을 지닌다. 무성한 잎을 드리운 만큼 꽃과 열매도 크다.

우리가 지식을 쌓고 공부하는 목적이 생존 온도를 높이는 일이라면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일이 먼저이다. 건강한 토양에서 잘 내린 뿌리라야 우람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 살면서 큰 것과 작은 것, 먼저 할 일과 나중할 일을 아는 일은 쉬운 듯하지만, 어렵다. 목적과 방향을 알면 구분할 수 있지만 불분명한 가운데선 쉽지 않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우리가 지식을 확장하는 목적을 생존 온도를 높이는 일이며 내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가 강연 중 낭송한 김승희 시인의 「새벽밥」이 큰 여운을 준다.

새벽에 너무 어두워/밥솥을 열어 봅니다/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별이 쌀이 될 때까지/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별에서 쌀을 연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이질성의 것들에서 동질성을 찾은 은유적 사고이다. 무한대로 확장된 김승희 시인의 심상적 영토를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별이 쌀이 되고 밥이 되는 과정을 사랑스럽게 무르익는 과정으로 보는 일은 따뜻한 인문적 사고이다.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일, 시라는 콘텐츠도 잘 접목하면 인문 지성의 주춧돌을 쌓는 일이며 결국 생존 온도를 높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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