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93>
궁보무사 <29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3.13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단 데려다가 조사를 해봐야겠다"
21.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그 장사꾼은 이 노파가 소수성 안에 쓸만한 여자가 들어오기만 하면 예쁘게 화장을 시키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힌 후 사리 성주에게 보여주고 맘에 들면 즉석에서 얼마의 사례비를 받아 챙기곤 하는 일종의 뚜쟁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으흐흐흐. 됐다. 이 정도면. 달랑거리는 아래 두 쪽을 찬 사내놈치고서 이런 여자를 보자마자 두 눈이 휘까닥 돌아가지 않을 놈이 없겠어! 으흐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장사꾼이 예쁜 감물미녀를 다시 남자로 변장시키려고 할 때에 갑자기 무장을 한 소수성 병사들이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장사꾼과 감물미녀가 깜짝 놀랄 겨를도 없이 소수성 병사들은 칼과 창끝으로 두 사람을 겨누며 소리쳤다.

"네 이놈들! 우리 소수성을 몰래 염탐하러 온 세작(간첩)들이지"

"네에 아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장사꾼은 기가 막히다는 듯 두 눈을 둥그렇게 치뜨며 뭐라 말하려고 했다.

"일단 데려다가 조사를 해봐야겠다. 어서 이놈들을 묶어라!"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장사꾼과 감물미녀, 그리고 그의 하인 서너 명이 소수성 병사들에 의해 꼼짝없이 꽁꽁 묶인 채로 관가에 끌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혹독한 심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을 세작으로서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로는, 왜 여자(감물미녀)를 남자로 몰래 변장시켜서 데리고 다니느냐는 것이었다.

장사꾼이 이에 대해 제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하고 변명을 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성주(사리 성주)의 특별 지시를 받은 관리들은 무조건 똑바로 아는 대로 정직하게 불라며 장사꾼과 그 하인들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하였다.

그 반면 사리 성주는 감물미녀만을 별도로 데려다가 물고문을 한답시고 그녀를 홀랑 벗겨서 미지근한 물속에 집어넣었다 뺐다 해가면서 이리저리 한참 즐기고 있었다.

결국 그 장사꾼과 하인들은 막무가내로 두들겨 패는 매질에 견디다 못해 하지도 않은 세작질을 했노라고 억지 자백을 하게 되었고, 그 즉시 쇠고랑을 찬 채 감옥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아무런 죄가 없음이 밝혀져 장사꾼과 그 하인들은 감옥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미 그들의 몸은 너덜너덜 해어진 걸레처럼 만신창이가 되고난 다음이었다.

하는 수없이 그 장사꾼은 몸이라도 보전하여 집에 돌아가고자 감물미녀를 비단 한필 값도 안 되는 헐값에 팔아치웠고, 결국 감물미녀는 사리 성주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본디부터 아름다운 걸 밝히는 게 취미이자 그의 삶의 목적처럼 되어있는 사리 성주는 천하일색이나 다름없는 감물미녀를 자기 정식 배필로 삼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사리 성주는 이렇게 예쁜 여자의 몸에서 나는 자기 자식들이라야만 아들이건 딸이건 무조건 예쁘지 않겠느냐하는 생각을 평소부터 해왔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소수성 사리 성주의 정식 아내가 되어버린 감물미녀는 그러나 그 기쁨을 느껴볼 사이도 없이, 밤이나 낮이나 화초(花草) 처럼 무조건 방안에만 틀어박힌 채 저 홀로 쓸쓸히 지내야하는 따분한 신세가 되고 말았음을 곧 알게 되었다.

신혼을 맞이한 여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고 하는데 난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남편인 사리 성주가 낮이건 밤이건 자신에게 아예 다가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