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탐방 박물관
테마탐방 박물관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7.03.12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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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적박물관

일본보다 500년 앞선 지적·측량기술 한자리에

 소 개

지적박물관은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 옛 양화초등학교에 있다. 한국지적史를 알 수 있는 지적 유물(토지문서, 측량기계 등)과 향토지, 백년사, 기독교분야(성서, 개교회사) 등 다양한 서지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관람은 휴관일인 월요일과 법정휴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다.(문의 : 043-651-4114)

▲ 페교를 활용해 조상된 지적박물관 전경 박물관 탐방을 시작하면서 찾아갈 박물관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찾기도 하고, 아무 정보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 그곳에 있는 문화재와 만나기도 한다. 사전 지식을 갖고 박물관을 찾을 경우 문화재를 빨리 이해하고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작정 떠나 마주하는 문화재에서 새로운 느낌과 시각을 받는 장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적박물관 탐방을 앞두고 이름도 낯선 박물관을 알아보기 위해 사전 조사를 했다. 지적이란 무엇일까 어떤 곳일까 어떤 것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탐방하는 날은 오히려 무작정 떠나는 것보다 더 막막한 상태로 지적박물관을 찾았다.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 금성면에 옛 양화초등학교를 활용해 조성된 지적박물관은 노란 박물관 간판만 없다면 그냥 오래된 학교라고 할 정도로 허름했다. 텅 빈 운동장은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듯 여기 저기 풀밭이 되어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니 아이들 대신 낡은 활자 인쇄기가 먼저 맞이한다. 그 뒤의 벽면에는 대동여지도와 고대에서부터 시작된 측량의 역사를 그림과 사진을 전시해 막막한 마음으로 지적박물관을 찾는 이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 대마도지도를 인공위성사진과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는 리진호 관장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있는 지적박물관은 리진호 관장이 지적공사와 관련 업종에 40여년간 일하며 모은 자료 2000여 점과 향토자료 등을 4개의 전시실에 전시해 놓았다. 리진호 관장은 "지적이란 땅의 호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사람의 뿌리를 호적에서 찾듯 토지의 위치와 소유, 소재 등을 정하고 기록하는 것이 지적이다"고 말한다. 전시물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꼼꼼하게 설명하는 그를 따라 지적방으로 들어섰다.

지적유물·측량 역사 한눈에
▲ 사진으로 측량에 관한 저료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토지문서와 측량기계 등 한국의 지적사(史)를 알 수 있는 지적유물들은 관련 서적을 전시한 지적방(서)과 측량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지적방(동)으로 구분하고 있다. 책과 관련된 지적방(서) 전시실에는 19세기 측량 교과서인 '상명산법' 필사본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측량책으로 이한용이 지은 '토지측량법측량' 등 지적 관련된 서적이 전시되어 있다. 또 대한제국 때 지계아문(地契衙門)에서 발행한 토지문서 원본과 1900년에 미국의 측량사 레이몬드 크럼이 실측해 제작한 '한성부지도' 등 국내 유일본 50여점과 한국 최초의 근대수학책인 '정선산학', 낱장으로 된 문권으로 어윤중의 교지, 묘지계, 토지신고서 등 옛 자료들을 볼 수 있다. ▲ 자의 변천과 종류를 볼 수 있도록 지적방(동)에 측량도구를 전시해 놓았다.

"땅은 공기 같은 것이어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되는 것으로 땅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의 측량 기술은 일본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음에도 현재 우리는 일본에 의해 만들진 지적을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을 만큼 지적에 관한 연구가 제자리걸음이다"며 안타까워했다.

꼼꼼히 서적을 둘러보고 지적방(동)으로 발길을 옮기자, 그곳에는 다양한 측량 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가장 원시적으로 사용했던 손이나 발로 재던 자의 개념부터 쌀알을 뉘여 자로 사용했다는 벼자와 대나무로 만든 줄자 등 기록에 나와 있는 측량기구부터 현대식 도구들을 살펴볼 수 있다. 벽면에 벼알로 만든 벼자에 대해 그는 "단군시대 때 쌀알 100알을 세워 자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재현한 것으로 쌀알을 세우면 23.65cm 이고, 눕혀 놓으면 35cm로 실물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 쌀알을 세워 자로 사용했던 벼자 '기리고차'그림으로 재현 어렵고 딱딱한 지적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기록의 재현을 고집하고 있는 그의 열정은 기리고차(記里鼓車)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400년대에 장영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기리고차는 거리를 측정하던 수레로 기록만 남아있던 것을 리 관장이 미술 전문가에게 의뢰해 그림으로 재현한 것이 우리가 그림으로 보는 기리고차다. 한컷의 그림으로 보는 기록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1평의 개념을 전시실 바닥에 만들어 탐방객들이 실측해 수치와 비교할 수 있도록 하고, 새끼줄과 자를 이용한 거리재기 등의 체험도 가능하다. 전시실은 지적에 관한 관련자료 외에도 각 고을의 역사가 담긴 향토지자료로 8개 시ㆍ군지, 2개 읍·면지, 3개 군 자료집을 집필ㆍ편집하면서 수집한 도·시, 군·읍ㆍ면지, 마을지와 향토지 765권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근대 한국의 백년을 각 전문 분야마다 정리해놓은 백년사자료와 한국 최초의 성경과 영인본 등 800여권의 관련 서적이 전시되어 있다. 지적에 관한 한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리 관장의 자료들은 교실 6개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 쌓아 놓을 만큼 방대했다. 자료를 수집할 때마다 그가 겪은 고초를 '책사냥 발자취'란 책으로 엮었을 만큼 남모를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란 안보면 100년 안에 다 썩어 사라진다"고 말하는 리 관장은 아무리 귀중한 자료라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박물관 자료를 개방하고 있다. "많이 보고, 많이 들춰보고, 많이 물어보라"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리 관장의 열정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껴 서 있는 지적박물관, 오랜 책장을 펼치듯 아직도 땅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찾아오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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