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돌다리
천년의 돌다리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8.08.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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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안희자 수필가

 

목덜미로 미끄러지는 땀방울을 연신 훔치며 그 앞에 섰다. 청량한 물길 따라 세금천변에 다리 위로 땡볕이 내리꽂는다. 천 년을 묵은 돌다리. 충북 진천에 관광명소로 농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울멍줄멍하게 박힌 돌들이 붉은빛이 감돌아 더 깊은 품결을 자아낸다. 몸통부터 꼬리까지 길게 이어진 다리 모양이 마치 거대한 지네가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듯하다. 이곳은 사력 암질의 붉은 돌을 첩첩이 쌓아 만든 다리로, 현재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이다. 고려시대 임장군이 놓았다는 다리는 길이 93.6m, 28칸의 교각이 세워져 있다. 규모도 크지만 축조술도 특이하다. 석회를 쓰지 않고 자연석을 그대로 쌓았는데도 큰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고 지금까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농다리 앞에 다가갔다. 아기 걸음마를 떼듯 조심스레 한 발 내디뎠다. 밑을 내려다보니 유속이 빨라 오금이 저려온다. 돌다리를 걷고 있노라니 고향 땅을 밟은 듯이 정겹기만 한데, 내 몸이 물살에 떠내려가는 것처럼 두려웠다. 이번엔 등이 넓은 돌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느리게 걷다 보니 초록 숲의 풍경들이 눈에 쏙 들어온다. 들린다. 콸콸콸 흐르다 퀄퀄 흘러가는 물소리, 살아있는 리듬이랄까. 그 리듬에 맞춰 걷다가 발로 바닥을 힘껏 굴러 봐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얼마나 견고하게 쌓았으면 장구한 세월을 견디어냈을까. 천 년의 역사를 품은 다리엔 수많은 객의 발자국이 찍혔으리라. 천변 사이에 다리가 없었더라면 운치도 빼어난 풍광도 느껴보지 못했으리라. 다리를 설치한 사람의 수고로움을 생각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모했던 시절, 부모님은 나의 다리가 되어주었다. 맨몸으로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해주셨다. 어쩌다 직장 업무로 늦게 귀가할 때면 큰길까지 마중 나오셨던 부모님. 가시밭길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셨다. 지금, 나의 둘째딸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열정 하나로 자신이 꿈꾸던 방송 전문직에 몸담고 있다. 스스로 믿음의 돌을 켜켜이 놓으며 삶의 다리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고 있다. 처음 도전장을 내밀던 때가 기억난다. 작은 체구에 자신의 어깨보다 큰 카메라를 메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일하는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도 했고 설레었던 순간도 있었다. 경력이 축적되면서 방송국 PD( 프로듀서)부터 작가까지 두루 섭렵하며 자신의 끼를 한껏 발휘하고 있다.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부모로서 대견하고 뿌듯했다. 그동안 숱한 고비가 왜 없었을까. 시간에 쫓겨 쪽잠으로 밤새우기를 수만 번, 남몰래 눈물도 훔쳤을 거다. 지금까지 삶의 다리를 탄탄히 세운 만큼 안정되어 가는 딸을 지켜보며 오늘도 나는 응원한다. 고집스레 한 길만 걸어온 삶, 즐기며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스스로 견고하게 쌓은 돌다리는 쉬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인생길은 한 번의 요행이 아니다. 지금 어디선가 딛고 일어설 다리가 없어 허공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청춘들은 얼마나 고달픈가. 그들이 절벽 같은 험준한 다리도 위기의 출렁다리를 만나더라도 도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농다리를 휘돌아 나오는 길, 유유히 다리를 건너 풍만한 자연과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은 돌다리 때문이다. 모두에게 등을 내어준 농다리처럼, 인생의 다리는 하루아침에 쌓아지지 않는 거라고. 공들여 쌓은 다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거라고, 천 년의 돌다리가 내게 일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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