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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0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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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
이 재 은 <논설위원 충북대 교수>

무척 춥다고 느껴 천막 밖의 수은주를 보니 영하 27도, 교대 근무를 하려고 곤한 잠에서 깨어난 장병들은 신으려는 전투화가 빳빳하게 얼어 있어 애를 먹곤 하였다. 얼굴 시린 찬바람에 잠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 이어졌다. 장갑에 마스크에 방한복에 목도리에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해도 어쩔 수 없이 춥기만한 한겨울 깊은 밤에 맡은 바 위치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 장병들은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이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 이 나라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해 보았을 동계 혹한기 훈련의 한 장면이다. 해마다 1월에서 2월 사이에 행하는 것으로 기억되는 훈련의 하나였다. 만 3년간 강원도에서 육군 장교로 복무를 한지 벌써 1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지치거나 고단하면 그 당시를 떠올리면서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엊그제 눈발이 날리는 차가운 날씨 속에서 고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가슴 한구석이 찡- 하는 것이 안타까운 심정뿐이었다. 처음 유해가 도착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TV를 통해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잘 자라서 집안의 기둥이라 여기는 자녀를 군에 보내고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 수많은 어머니들은 함께 눈물짓고 슬퍼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지난 2월 27일 머나 먼 이국 땅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폭탄테러로 인해 숨진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거창하게 세계 평화의 유지와 국위 선양을 위한 의로운 죽음이라고까지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외국에서의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조국에서의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평범한 한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러한 평범한 국민으로서의 의무조차 이행하지 못한 이들이 있는 실정이고 보면 참으로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평범이 진리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지만 막상 본인이 하려 하면 쉽지 않고 머뭇거리는 것이 인생사다. 조개는 연한 조갯살을 파고든 모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참으면서 노력해 진주를 만들어낸다. 평범한 일상의 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고통을 감내하고자 하는 고 윤장호 하사의 마음은 비범함을 추구하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의로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변한 것 같다. 열사나 의사와 같은 호칭이 주는 깊은 뜻은 고사하고 죽음 그 자체의 덧없음을 말하는 세태이고 보면 더 논할 이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영결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분위기를 지닌 의식의 진행과 젊은 장병에 대한 예우는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해주었다는 생각이다.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국가의 부름에 자진해서 응한 한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예우를 갖추어 준 것은 지극히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 희생과 소명 의식에 대해 적절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응해 희생한 분들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보내야 한다. 다시 한 번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와 헌신하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며 고 윤장호 하사의 명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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