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리얼리스트 척 클로스
포토리얼리스트 척 클로스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8.07.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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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척 클로스 Big SelfPortrait, 273.1 × 212.1cm, Acrylic on Canvas, 1967~68.
척 클로스 Big SelfPortrait, 273.1 × 212.1cm, Acrylic on Canvas, 1967~68.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필자가 척 클로스(1940~ )의 작품 를 본 것은 아주 오래전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였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두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초상화임에도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의 크기에 한번,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할 수 없는 리얼함에 한번.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림에 격자무늬가 보인다. 격자무늬만이 이 그림이 사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처럼 그림으로 그렸으되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림을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혹은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회화라 부른다.

척 클로스는 초상화를 그림에 있어 작은 사진의 이미지를 커다란 캔버스에 확대하여 극사실적으로 그리는 포토리얼리스트화가로서 어깨 부분에서 잘린 두상 시리즈의 초상화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사진의 이미지와 똑같이 그리려고 사진에 격자무늬로 획을 나누고, 그와 같은 비율로 캔버스에 격자무늬 획을 그린 다음 각각의 격자 안에 있는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옮긴다. 여기다 에어브러쉬를 사용하여 극사실적인 기법을 극대화한다. 이는 포토리얼리스트 화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기법으로써 작가의 주관은 절대적으로 배제되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작품 는 그가 1940년생임을 감안할 때 28세의 청년 척 클로스이다. 한참 멋지게 보이고 싶은 나이다. 그러나 자신의 자화상임에도 그저 머그샷(mug shot/신원확인용 얼굴 사진)처럼 연출했을 뿐 전혀 미화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결점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유사성(likeness)'에만 충실할 뿐이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담배를 꼬나문 채 두꺼운 뿔테 안경 속 너머에서 마치 뭔가를 조롱하듯이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 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한 수염, 옷도 입지 않아 다소 껄렁해 보이면서 어찌 보면 현상금 걸린 수배범처럼 극도로 타락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내 작품에 인간적인 문제는 거절한다”고 말하는데, 자신의 초상화(Portrait)를 초상이 아닌 두상화(Head)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는 그저 과정에 충실하며 회화로 사진을 미메시스 할 뿐이다. 순간에 완성되는 사진과는 달리 그의 회화는 화룡점정을 할 때까지 완성이라 할 수 없는 긴 여행을 한다. 그가 어떤 미디엄을 선택하든 예술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필자가 처음 그의 자화상과 대면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같은 순간적 경험일 것이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1960년대의 미국사회는 변혁과 혼란의 시기다. 미술사적으로는 미학적 전통의 권위를 획득한 본격적인 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위미술운동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당시 자본주의의 대중문화 속에서 탄생한 팝아트의 시대적 조류는 그가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가는 단초를 열어주게 된다. 예술은 그 시대의 사회가 빚어낸 문화적 산물이듯이 예술가들이 화폭에 담아내는 다양한 의미들은 곧 그 시대가 그려낸 사회의 모습과 정신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그는 미국사회의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도시문명에서 오는 획일적 경향과 그로 인한 사회 불신이 그의 조소를 자아냈던 것이다. 그가 초상화로 현실에 대한 냉담함을 드러낸 무언의 조소적 표현은 당시 미국인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자신을 모델 삼아 카메라의 눈을 빌려 시대의 자화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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