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아지에의 불멸
라부아지에의 불멸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7.0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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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불멸은 필멸의 인간이 꿈꾸는 애처로운 희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과학자들이야말로 이 불멸의 존재를 찾는 바로 그 애처로운 자들이다. 과학자들은 이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다.

불멸을 과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보존'이 아닐까? 물리학 책은 무엇이 보존되고, 어떻게 보존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질량의 보존, 에너지의 보존, 운동량의 보존 등, 물리학 법칙은 보존에 관한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보존되는 것이 없다면 법칙이 존재할 수 없고,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이 없다면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없고 예측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일 수 없는 것이다.

화분에 나무를 심어 놓으면 나무가 자란다. 나무가 자라는 것은 화분에 있는 토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무가 자라면서 나무의 무게도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이 나무의 무게는 어디서 왔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질량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질량 보존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나무의 질량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추적하는 과학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무를 이루는 물질은 토양에 있는 영양분, 화분에 주는 물, 공기 중의 산소 등이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상호교환 되면서 생긴 결과이다. 이것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물질이 없어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가장 먼저 알아낸 사람은 아마도 프랑스 혁명기의 과학자 라부아지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철이 타면 질량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물질이 타면 무게가 줄어든다는 통념을 깨뜨렸다. 탄다는 것은 산소와 격렬하게 결합하는 화학반응이다. 나무가 타면 나무의 탄소가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어 연기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나무가 타고 남은 재는 나무보다 가벼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철이 타면 철이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철이 되는데 산화철은 철에 산소가 붙은 것이니 원래 철보다 산화철이 더 무거워진다.

라부아지에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들은 태우거나 압축하거나 자르거나 날카롭게 연마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물질과 결합하거나 조합하며 떠돌아다닐 뿐 질량의 총량은 언제나 그대로이다.”라고 하면서 물질의 보존을 주장하였다. 라부아지에의 이 주장은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라부아지에는 이 보존원리를 세금징수에 이용했다. 파리시 외곽에 성벽을 짓고 파리 시내도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물자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었다. 성벽을 통과하는 물자만 통제하면 파리시의 모든 물자가 통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루이 16세를 도와 세금징수에 공을 세운 죄로 혁명군에게 처형되는 비운의 과학자가 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물질의 불멸을 알아낸 그가 정작 자기의 불멸은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물질의 양, 즉 질량이 보존된다는 것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소위 E=mc²이라는 질량-에너지 등가원리 때문이다. 이식에서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력이다. 질량이 에너지로, 에너지가 질량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질량은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원자탄이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는 바로 질량이 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질량 보존 법칙은 버려야 한다. 그 대신 과학자들은 이제 에너지 보존이라는 더 막강한 무기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에너지는 정말로 보존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결국에 가서는 에너지가 보존이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과학계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하지만 불멸을 추구하는 필멸의 인간들은 그때에도 보존되는 다른 무엇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의 인간이 영혼이라는 불멸을 만들어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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