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봉을 오르며
까치봉을 오르며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8.06.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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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까치봉을 오르는 중이다. 이산은 육백 이십여 미터로 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등산길이라 오르기에 만만치 않은 곳이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오르는 이들도 많이 있다. 반면, 어쩌다 지인을 따라 멋모르고 올랐다가 경사가 심해서 두 번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가끔 혼자 이 산을 오른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며 운동 효과는 제법 되는 장점도 있지만, 힘든 길을 걷다 보면 산행이 우리의 살아오는 여정 같기도 하여 더욱 좋아진다. 산길을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일상에서 지쳐 있던 몸과 마음도 가벼워지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짧은 거리지만 구간을 나누어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며 걷는다.

첫 구간은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길이다. 산을 오를 때는 언제나 처음이 힘겹다. 평지에 익숙하던 몸이 갑자기 비탈진 길을 걷다 보면 숨이 가쁘고 발걸음도 무겁기 마련이다. 성급한 마음으로는 경사가 심한 까치봉을 오르지 못할 일이다. 마음에 추(錘) 하나쯤은 미리 달아놓고 시작해야 낭패가 없다. 앞장서는 마음을 다잡아 몸과 속도조절을 할 때이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등이 울창한 산길을 천천히 한 발짝씩 옮기며 주위에 시선을 돌려본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눈에 들어오고, 청명한 새소리에 기웃대다 보면 청설모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숲은 늘 같은 것 같지만, 찬찬히 보면 사실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산이 나를 밀어내지 않고 나 또한 산에 스며든 것처럼 신체에도 거부감이 없어진다.

이렇게 익숙해졌지 싶은데 앞을 보면 수많은 목재계단이 눈앞에 턱 버티고 있다. 이 구간을 인내의 길이라 부른다. 높다란 계단을 바라보면 까마득하게 느껴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삶의 길에도 늘 평지만 있지 않고 가파른 길을 마주할 때도 있었다. 묵묵히 하루하루를 충실하다 보면 힘든 고비를 넘기듯이 그저 멀리 바라볼 필요가 없다. 눈앞에 계단 하나씩을 밟고 내딛다 보면 시나브로 이산의 삼부 능선쯤 되는 곳에 훌쩍 올라서게 된다. 비스듬히 서 있는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가쁜 숨을 돌려본다. 나의 삶에도 몇 차례 힘든 위기가 있었지만 인내하며 잘 견뎌온 것 같다.

이제 조금만 오르면 곧 정상인듯하다. 코앞에 닿을 것 같지만 아무리 높지 않은 산일지언정 정상을 쉽게 내어주지는 않는다. 흙길이 파여 소나무 뿌리가 밖으로 드러나 발길에 밟힌다. 어려운 환경에 대처하느라 뿌리는 나무줄기처럼 보굿을 만들었다. 스스로 견디고 단단해지지 않으면 결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음을 나무도 터득을 했지 않은가. 뿌리를 밖으로 내놓고도 의연히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애잔하고 대견해 보인다.

정상에 서면 답답하던 마음도 탁 트인다. 한눈에 보이는 넓고 푸른 논들, 언제 봐도 수려한 의림지의 전경이 일상의 잡다한 마음의 찌꺼기까지 말끔하게 없애 주는듯하다. 이제 보너스 같은 사색의 길을 걸을 차례이다. 이 산에서 가장 완만한 능선을 자근자근 밟으며 산책하듯 호사스런 사색에 흠뻑 빠져도 좋을 산길이다. 산을 오르며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현재 서 있는 위치도 가늠해보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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