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나침반
내 삶의 나침반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6.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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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떠나간 “님”을 그리듯 뜬금없이 지난 5월 달력을 본다. 오월은 꽃만 세상에 불을 켜 놓은 게 아니다. 달력에도 빨간 등(燈)을 잔뜩 달아놓았다. “어린이(童) 날”, “어버이(父母) 날”, “스승(師)의 날”, “부부(夫婦)의 날”, “부처(佛)님 오신 날…….” 스승, 스승 하다가 스승의 날에 눈이 멈춘다.

스승이라면 비단 학생과 스승 관계뿐이겠는가 만은 요즘 도처에 “스승” 다운 스승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비 맞은 중처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에서 군(君)이 빠지고 어린이(童)와 부처(佛)가 들어앉고, 아버지가 어버이로 바뀌고, 스승(師)만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네.' 하며 중얼거려 본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사람답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자 정신적 등불이다. 괜한 기우(杞憂)일지 모르지만, 5월의 빨간 숫자도 권력이나 힘에 편향되어 색깔이 바뀌지나 않을까? 하고 달력을 뚫어지게 본다.

5월은 방향을 제시하는 생명의 길목이다. 퇴화, 소멸, 성장이 공존하는 길목에서 방향을 어느 쪽으로 트느냐에 따라 진로가 달라진다. 또한, 5월은 스승이다. 우리 삶의 선상에서 보면 개인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공동체를 인식해 나가는 시기이다. 인간은 환경적 지배를 받으므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성이 좌우된다. 나는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한 모든 것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어둠보다는 빛을, 투쟁보다는 배려와 사랑을 좋아한다. 내게 등불이 될 만한 스승다운 스승이 얼마나 있을까?

“~답다”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고 특별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이다. 특별한 부분이란 언제 어디서나 밝고 맑은 기운이 도는 것이다. 우리는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에 “~다운”이라는 특별한 존재에게 의지하며 기대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이 신(神)을 의지하고 따르지만 나는 나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스승을 그리워한다. 책이든 사람이든 스승다운 스승, “~답다”를 상기하다 논어의 한 구절을 읊조린다.

주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더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하는 것입니다.” 경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나이가 들어도 명예(名譽)를 좇는 것이 아니라 영예(榮譽)롭게 살아가는 스승님을 보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스승도 제자도 본인이 만드는 것. 스승다운 스승을 만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격이나 실력보다는 쉽게 가는 길을 택하다 보니 스승다운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 좀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좋은 스승 밑에서 가르침을 받아 세상에 나아간다면 미추(美醜)를 보는 시야가 흐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존경할 스승도 존경받는 스승도 없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비록 험난하고 실패로 돌아갈지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택한 최선의 길이었기에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어 좀 더 나은 세계로 나가게 할 것이다. 나는 남들이 깐깐하다고 하는 스승을 좋아한다. 인기주의가 아니라 세상을 바로 읽고 맑은 기운을 담은 스승다운 스승을 나는 좋아한다. 내게 채찍만 주고 인색한 사람일 지라도 나는 그런 분을 존경한다.

내 기억에 남는 스승은 나를 아끼던 스승님도 아니요, 내가 자주 찾아뵙는 분도 아니다. 눈을 감게 하고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운 나게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예의를 갖추고 언행과 행동을 조신하게 하는 사람, 그런 분을 몇 분 모셨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혼자 있을 때 생각만 해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사람. 그런 스승들이 나침반처럼 계시기에 황무지 길도 담대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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