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84>
궁보무사 <28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2.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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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을 시작하겠소이다. 바른대로 말해 주십시오"
12.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이때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어느 누군가가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얼핏 보기에 기골이 장대한 젊은이 같아 보였다. 내덕은 바짝 졸은 자세로 고개를 살짝 쳐들고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직 어두움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인지 내덕은 그의 얼굴 윤곽을 쉽게 알아볼 수는 없었다.

"자네가 내덕인가"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내덕의 두 귀전을 두들기듯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

"자네가 내덕이냐고"

이번엔 조금 더 크게 들려왔다.

내덕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 목소리 같기에 두 눈을 좀 더 크게 떠가지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이런! 이제까지 잔뜩 구겨져 있던 내덕의 얼굴 위에 갑자기 환한 미소가 띄어졌다.

송절! 바로 송절이었다.

송절은 내덕과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호형호제 해가며 친하게 지냈던 아니 지금까지도 줄곧 진한 우정을 맺고 있는 친한 친구 송정의 맨 아래, 막내 동생이 아니던가

송정은 그의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한참 뛰고 놀아야 될 어린 나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었다. 송정은 줄줄이 딸려 있는 어린 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이웃인 내덕과 율량의 집을 자주 드나들며 신세를 지곤 했었는데, 관상을 조금 볼 줄 알았던 내덕의 아버지는 언제 우리가 저들의 신세를 톡톡히 지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남아도는 쌀이 있으면 송정의 집에 아낌없이 퍼주도록 하인들에게 단단히 일렀고, 따라서 내덕의 아버지 덕택에 송정과 그의 어린 동생들은 굶주림을 겨우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송정의 가족들에겐 내덕의 집안이 생명의 은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아, 누군가 했더니 바로 자네로구만! 그래! 자네 형님 송정은 요즘 잘 계시는가"

내덕은 비로소 안심을 한 듯 한숨을 길게 몰아내 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송절은 내덕의 묻는 말을 아예 무시하는 듯 바닥에 놓여 있는 흉측스럽게 생긴 나무 의자 위를 가리키며 내덕에게 앉으라는 시늉만 해보였다.

'아,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야! 이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은 격이 아니라 아예 살아날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내덕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아주 여유 있는 표정으로 송절이 권하는 그 의자 위에 자신의 살찐 두 엉덩짝을 떠억 걸치고 앉았다.

"이제부터 심문을 시작하겠소이다. 모든 걸 솔직히 바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내덕 형님께서 뭔가를 자꾸 숨기려고 든다면 모진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여전히 무뚜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절은 몹시 차가운 목소리로 내덕을 향해 내뱉듯이 말했다.

"아, 그래. 그런데, 송절! 내 몸에 묶여 있는 이 줄 좀 느슨하게 해주지 조사해 보면 알겠지만 사실 난 아무런 죄가 없어요. 이렇게 온몸이 꽁꽁 묶여 있으니 지금 내가 숨을 쉬기에도 힘이 들 지경이야."

그러나 송절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내덕의 몸에 두른 밧줄을 그가 앉아있는 의자 위 사방팔방 튀어나와 있는 모서리 끝에다가 이리저리 끼워 맞추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젠 내덕이 육중한 의자 위에서 아예 옴싹달싹조차도 할 수 없게끔 되어져 버렸다.

미동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덕의 몸을 의자 위에 단단히 고착해 놓은 송절은 다짜고짜 내덕의 아래 바지를 두 손으로 잡아 훌러덩 아래로 까 내렸다.

"어 어 아, 아니.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응"

내덕은 송절의 손에 의해 부끄러운 자신의 육질(肉質) 방망이와 무슨 두 쪽이 그대로 튀어나와지자 기겁을 하며 외쳤다. 그러나 내덕이 더 크게 놀랄만한 일이 송절에 의해 곧바로 이어서 벌어졌다.

송절은 미리 준비해 가져온 듯 한 대여섯 자 길이의 기다란 띠 한 개를 꺼내어 다짜고짜 내덕의 길쭉한 육질 방망이를 뿌리 끝 부분부터 칭칭 동여매더니 나머지 그 띠를 바닥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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