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78>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78>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2.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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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발명과 제조

화약의 전파, 서양 역사를 바꾸다

   
▲ 사마르칸트 시내 전경

화약은 중국 연단술사들이 단약(丹藥)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명되었다. 연단술(煙丹術)이란 옛날 중국에서 도사들이 수은의 가장 중요한 광물성분인 진사(辰砂)로 황금이나 선약(仙藥)을 만들었다고 하는 연금술의 일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연금술은 두 가지 화학기술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비금속을 동, 연, 주석, 금, 은 같은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불로장생의 선약을 제조하는 기술이다.

연금술의 기원은 로마시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중국 도가(道家)의 출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집트는 귀금속 제조에 주력하고 중국은 선약의 제조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다가 자비르 이분 히얀 등 중세 무슬림 화학자들에 의해 양자가 비로소 결합되어 의학과 화학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그것이 13세기 이후 유럽에 전파되어 현대 실험과학의 기초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도가 불로장생 사상에 힘입어 발달

중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등 동양 여러 나라에서의 연금술은 도가의 불로장생 사상에 힘입어 발달하였는데, 주로 도사들이 진사로 황금이나 선약 등을 만들었기에 연단술이라고 일컬었다. 연단술은 신비사상과 결합하면서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상당히 발전되었다. 당(唐)초의 약(藥)학자 손사막(589~682)이 지은"단경(丹經)" "내복유황법(內伏硫黃法)"에는 이른바 복화(伏火)를 제조하는 처방이 상술되어 있다. 복화는 그 소재가 유황, 초석, 목탄이라는 데서 흑색화약과 기본성분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 완전한 화약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8세기 이후 중당기(中唐期)에 오면 화약제조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당시는 물론이고 오랫동안 화약은 일종의 약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명대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도 화약은 창선(瘡鮮)과 살충에 주효하며 습기와 온역(溫疫)을 제거하기도 한다고 일종의 약으로 소개하고 있다.

화약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약용보다 군사상 화기(火器)로 쓰이면서부터이며, 그로 인해 대외에 전파되고 교류를 하게 되었다. 화약이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아직도 미상이지만 문헌기록상으로 볼 때 당 덕종 흥원(德宗 興元) 원년(784)에 반란군 이희열(李希烈)이 사용한 방사책(方士策)이 화기의 최초 사용으로 간주되고 있다.

북송 대에 이르면 화전, 화구, 화질려, 화구, 화포 등 다양한 이름의 여러 가지 화기가 제조되어 송군이 상비하고 있었으며, 전문적으로 화약과 화기를 제작하는 화약요자작(火藥窯子作)이라는 작업장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소성 화기에 불과하였고, 11세기 중엽에는 화약제조술이 발달함으로써 폭발성 화기인 벽력화구(霹靂火毬)가 제작됨으로써 화기의 위력이 더 한층 강화되었다.

남송에서는 금(金)나라의 부단한 공격에 대처하기 위하여 화기를 한층 개량하였다. 13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송·금 쌍방 모두 금속제 화기를 제작,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몽골도 금으로부터 화약과 화기 제조술을 전수받아 1231년 하중부(河中府)의 금군을 공격할 때 진천뢰(震天雷)라는 화기를 사용하였다.

몽골군은 처음으로 죽통(竹筒) 대신에 금속제 관형(管形) 화기를 사용하였다. 이렇게 금속제 관형화기에 탄환이나 포탄을 장착한 것은 몽골시대부터이며, 이것이 바로 대포(大砲)의 효시이다. 이렇게 13세기 전반기에는 금나라와 원나라에서 각각 철화포와 진천뢰 같은 금속제 화기가 창제되고, 이어서 원에서는 근대 대포의 비조라고 할 수 있는 금속제 관형 화기가 만들어졌다.

화약의 교류는 중국의 주요 교류 상대였던 아랍, 이슬람세계에 전파되고, 이곳을 통해 유럽에 다시 전해졌다. 아랍, 이슬람세계에 대한 화약과 화기의 전파는 1258년 몽골 서정군에 의한 압바쓰조 이슬람제국의 붕괴를 전후하여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단계는 중국의 화약제조법을 수용하여 화약을 자체 제조한 단계이며, 둘째 단계는 중국의 화약과 화기가 직접 전입된 단계이다. 몽골의 서정과 그로 인한 압바스조 이슬람제국의 붕괴, 일 칸국의 건립 등 몽골제국의 군사적 서행(西行)과 서아시아에 대한 경략은 중국의 화약과 화기가 아랍-이슬람세계에 직접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중국의 각종 화기가 속속 모조되었다. 이렇게 아랍-이슬람세계에 보급된 화약과 화기는 여러 계기를 통해 유럽에 전파된 후 신속하게 확산되었다. 중세의 암흑기 상태에 있던 유럽은 12~13세기부터 선진 이슬람 문명을 수용하기 위하여 아랍어 서적들을 다량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인들은 아랍인들보다 수십 년 후인 13세기 후반부터 화약과 화기에 관해 알게 되었다. 1326년에 유럽에서 이탈리아가 최초로 금속 관형 화기인 철포를 제조한 데 이어 영국도 1342년 경에 철포와 1347년 아랍의 "마드피아"를 모조한 화포(火砲)를 제조하였다.

유럽 중세 봉건영주 성 무너뜨려

중국으로부터 아랍-이슬람세계에 전해진 화약이 13세기 후반에 유럽에 알려지면서 유럽에서는 비로소 화약과 화기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유럽에서 화약과 화기는 중세 봉건귀족들의 난공불락의 근거지라던 성채(城砦)를 일격에 파괴할 수 있는 위력 있는 무기였기 때문에 유럽의 봉건제도를 해체함과 동시에 중세에서 근세로 옮아가는 데 촉매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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