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쟁
아름다운 경쟁
  • 우래제<전 중등교사>
  • 승인 2018.03.2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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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우래제

오래전부터 묵은 밭에 두릅을 심었다. 해마다 두릅나무에 물오르기 전 여기저기 솟아난 어린나무를 캐어 두릅 밭을 조금씩 넓혀갔다. 그리고 긴 뿌리는 적당히 잘라 하루 이틀 말렸다가 조그만 이랑을 만들어 묻어 두었다. 두릅나무는 씨로도 번식하지만 뿌리로도 번식을 하기 때문이다. 뿌리를 말리는 것은 생존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해동하였으니 두릅 묘목을 옮겨 심을 때가 되어 몇 년 전에 뿌리 꽃이(근삽) 해 두었던 이랑을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반 이랑은 서너 뼘 크기로 자랐는데 나머지 반 이랑은 아직도 엄지손가락만 하다. 왜 그럴까? 반 이랑만의 문제는 무엇일까?

식물은 서로 자연스럽게 사이좋게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경쟁을 한다. 빛과 양분, 물과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종과 때로는 같은 종과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대나무밭은 다른 식물이 살아가기 쉽지 않다. 대나무는 땅속으로 긴 줄기를 뻗어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토양을 장악해 다른 식물이 뿌리를 내릴 공간을 두지 않는다. 넓게 퍼져 자라는 쇠비름이나 바랭이 같은 식물이 다른 식물과 같이 자라면 반듯하게 자라나는 것은 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나무 숲이 줄어드는 것은 참나무와의 경쟁 때문이다. 잎이 넓어 적은 빛으로도 광합성을 많이 할 수 있는 참나무가 소나무보다 빨리 자라 빛을 가리면 많은 빛이 필요한 소나무는 말라 죽고 만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은 삼밭에 나는 쑥이라는 뜻으로,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저절로 꼿꼿하게 자라듯이 좋은 환경에 있거나 좋은 벗과 사귀면 자연히 주위의 감화를 받아서 선인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디지털 한자사전)이다. 사람의 눈에는 쑥과 삼이 빛을 받기 위해 경쟁하여 반듯하게 자라는 것이 아름답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쑥과 삼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사의 경쟁이 아닐 수 없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나오처럼 아름다운 경쟁은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아직도 엄지손가락 크기의 반 이랑의 문제는 식물 간의 경쟁을 이용하지 못한 내 탓이다. 작년 봄에 작은 눈이 나올 때 잡초를 뽑다가 시간이 없어 반 이랑은 해를 넘기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잡초를 없앤 반 이랑은 아직도 엄지손가락 크기이고 잡초를 뽑지 못한 곳의 묘목은 경쟁을 통해 쑥 컸던 것이다. 너무 부지런한 것도 병이다. 적당히 잡초도 남겨 둬야 할 것을. 그런데 또 다른 곳. 아주 잡초가 아주 무성한 곳에서는 엄지손가락 크기만 하거나 죽어 없어진 것이 많다. 어느 정도의 경쟁이 적당한 것인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 아닐까?

그리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아무 경쟁도 없이 살게 해야 할까? 아니면 무한 경쟁 속에 살아가도록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 경쟁해야 하는가는 누구의 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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