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받으며
건강검진을 받으며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3.21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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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사흘 전 종합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진할 때가 돼서 한 게 아니라 몸이 아파서, 어딘가 중병이 든 것 같은 불길함과 두려움이 엄습해서 예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위내시경검사 대상자라는 공문을 받기도 했지만 한 달 전부터 몸 상태가 기분 나쁠 정도로 좋지 않았거든요.

왕성하든 식욕도 떨어지고, 평소보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속이 언짢을 정도로 더부룩하고, 가끔씩 생목도 올라오고, 수면의 질도 현저히 떨어지고, 무리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쉬 피로해 지고, 아내의 채근도 있어서였습니다. 아니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산 몽매함에 대한 때늦은 후회와 각성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정기검진 단골병원인 청주 H 병원에서 위와 장 내시경검사와 복부 CT 촬영 등 여러 장기와 기관에 대해 검진을 받았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지긴 했으나 검사 전 쿨프렙산이라는 장 세척제 복용은 여전히 고역이었습니다. 아침 점심을 굶고 고약한 물을 수차례 들이키며 배설하는 과정은 물고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세상사 비우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절감하면서, 비우면 시원하고 가벼워진다는 걸 새삼 깨우치면서 비우는 고통을 형기를 채우는 수인처럼 감내해야 했으니까요. 정작 위와 장의 내시경검진은 수면상태로 해서 했는지, 했다면 어떤 의사가 했는지도 모르게 끝났으니 주객이 전도된 거지요.

다행히 검사결과는 일단 안심입니다. 주치의가 장에 용종 하나를 떼어냈고 위에 염증이 심해서 우선 일주일 약을 처방했으니 복용하고 일주일 후에 조직검사 결과를 보러오라 했거든요. 실은 겉은 멀쩡해도 움직이는 종합병동이었습니다. 협심증과 허리협착증과 전립선비대증을 달고 사니 말입니다.

심장과 연결된 관상동맥이 좁아져 심한 흉통이 오는, 심하면 돌연사를 할 위험이 있는 협심증은 2000년 3월 1일 시술을 받은 후 3개월에 한 번씩 주치의로부터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고 위급 시에 쓸 비상약을 늘 휴대하고 살구요.

걷기 힘들 정도로 다리와 무릎이 저리고 아파 나도 모르게 허리가 꾸부정해지는 허리협착증은 악성 팔자걸음과 앉은 자세 불량이 원인이라는데 증세가 심해 즐기던 골프도 끊고 살다가 골프를 쳐도 아프고 안쳐도 아프므로 3년 전부터 다시 골프와 탁구를 즐기며 삽니다. 허리 눈치를 살살 보면서.

소변이 자주 마렵고 참기 어려운 전립선비대증은 나이 들면 대부분 그렇게 된다 하니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며 그럭저럭 삽니다. 협심증을 빼고는 당장 죽을병은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았는데 60대 중반에 들어선 요즘 부쩍 무기력해지고 앓고 있는 병 이외에 또 다른 몹쓸 병이 생긴 것 같아 몹시 씁쓸했습니다.

남들은 100세 시대라 60대는 청춘이라며 희희낙락하며 사는데 이 모양이니 한심할 수밖에요. 하긴 가난한 집안의 칠 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공무원 박봉으로 동생들과 가족들을 건사해야 하는 중압감을 안고 살았으니 고장 날만도 하지요.

그랬어요. 과로와 과음을 밥 먹듯이 했고, 실없이 청춘을 남용했으며, 알게 모르게 받은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였을 테니 온전할 리 없죠. 상흔이 나이테처럼 옹이 져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여 늦었지만 제 몸에게 저지른 지난 과오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을 배려하며 당신에게 감사드리며 살겠다고 말입니다. 미안해요. 넋두리가 길어서.

요즘 그대 몸은 어떠신지요? 혹여 저처럼 부리기만 하고 보살피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잘 섬기세요. 보약도 먹고, 운동도 하고, 풍광 좋은 곳에서 힐링도 하면서. 몸은 우주보다 귀한 바로 당신이니까요.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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