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79>
궁보무사 <27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2.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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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님의 사랑을 받은 후 병이 없어졌사옵니다"
6.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여자로서 심히 부끄럽고 쑥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어르신께 제가 감히 숨길 수가 없기에 솔직히 말씀드리옵니다. 실인즉 저는 나이가 조금씩 차면서부터 아주 이상한 병에 걸렸사옵니다."

"이상한 병 아니, 그게 무슨"

창리가 더욱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다음 말을 얼른 재촉했다.

"여자의 아래 그 곳에서 저는 매달 한 차례 이상씩 붉은 피를 토해내곤 하였사옵니다."

"뭐 그 그런데"

"그런데 제가 대신님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이후, 요즘 들어 그러한 병이 아주 말끔히 없어졌사옵니다."

"그, 그럼. 요즘 들어 네가 달마다 내리쏟던 그것이 완전히 딱 그쳐버렸단 말이더냐"

"그렇사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대신님의 은덕 탓 아니옵니까"

"그, 그렇게 된지 얼마나 지났더냐"

"약 한달 가까이 된 것 같사옵니다."

"아이고, 이, 이런."

갑자기 창리 대신의 얼굴이 시커먼 숯처럼 어두워졌고 말문이 콱콱 막혀졌다.

'이 어린 것이 여간 숙맥이 아니로구나.'

젊은 여자의 그것이 멈춤과 동시에 아이를 배게 된다는 것은 보통 남자인 나도 기본으로 알고 있거늘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이 그런 것조차도 모르고 있단 말이냐.

아! 그나 저나 대체 이를 어이할꼬.

지금 저 아이의 뱃속에 든 것은 내 씨인 것이 분명하거늘, 도대체 날 보고 이제 어쩌란 말인가.

자기 딸보다도 더 어린 여자를, 그것도 죄를 범한 여죄수에게 애기씨를 배게 만들어 놓았으니 만약에 이것이 소문이라도 나던지 하면 그런 망신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얘야! 알았다. 오늘은 내 몸이 너무 불편하니 이만 돌아가야겠구나."

창리는 그 즉시 집으로 돌아가 그대로 끙끙 앓아눕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눈치 챈 도암과 능소가 창리의 집으로 문병을 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예 화근이 없어지도록 그 여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깨끗이 처치해 버릴까요"

"아니다. 내가 생각을 좀 더 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자꾸나. 어휴!"

창리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몸서리를 마구 쳐댔다. 물론 그 여자를 죽이는 순간 어쩌면 모든 것이 깨끗이 해결되고 덮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 뱃속에 심어진 자기 아기씨였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을 해본댔자 창리 자신의 씨가 분명하거늘 대체 이를 어찌할 것인가.

머리를 싸맨 채 끙끙 앓고 있던 창리에게 아들 각리가 뜻밖에도 이런 반가운 말을 해주었다.

"제가 성 내의 감방 안을 두루 살펴보건대, 제법 얼굴이 반반한 여죄수들이 있던데요. 비록 볼품이 없는 값싼 식기일지라도 때를 빼고 광을 내놓으면 귀하고 비싼 식기로 바꿀 수가 있듯이 그런 여죄수들을 골라내어 잘 꾸며가지고 다른 성(城)에다 비싼 값으로 팔아보면 어떨는지요"

"아! 바로 그거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야."

창리는 누워있던 병석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들 각리의 의견 그대로 오근장 성주에게 고하고는 그리하도록 하라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 즉시 팔결성 내의 여자 죄수들 가운데에서 인물이 반반해 보이는 여자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는데, 창리와 관계를 맺은 그 청상과부가 당연히 본보기로 뽑혀졌다. 창리가 명령하여 그녀를 특별히 신경써서 잘 먹이고 몸치장도 예쁘게 꾸며두고 있던 차에 매우 다행스럽게() 오근장 성주의 그것이 한벌성에서 의도적으로 보내온 여장 남자 양지에 의해 불태워지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고, 여기에다 박자라도 맞춰주듯이 장수 두릉의 심복 백곡의 항명(抗命) 사건까지 겹쳐서 터지고 말았다.

창리는 만뢰산 쪽으로 도망치는 백곡을 죽이거나 잡기 위해서는 도중에 위치한 옥성(玉城) 성주 취라의 환심을 사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을 하여 자기 아들 각리가 청상 과부이자 죄수였던 그녀를 데리고 취라성주에게 찾아가 선물용으로 바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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