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나 먹자 , 꽃아
나무가 몸을 여는 순간뜨거운 핏덩어리가 뭉클 쏟아지듯
희고 붉은 꽃떨기들이
허공을 찢으며 흘러나온다.
봄 뜨락에 서서 나무와 함께
어질머리를 앓고 있는데 꽃잎 하나가
어깨를 툭 치며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누군가의 부음을 만개한 꽃 속에서 듣는다.
입안이 깔깔하다.
한 번도 밥을 먹은 적 없이
혼자 정신을 앓던 사람아 꽃아
모를 일이다 누가 아픈지
어느 나무가 뿌리를 앓고 있는지
꽃아, 일 없이 밥이나 먹자.
밥이나 한 끼 먹자.
시집 '밥이나 먹자, 꽃아'(천년의 시작)중에서
<감상노트> 나무가 몸을 열다니. 제 스스로를 꺼내어 톱밥을 내주다니. 그래서 핏덩이가 쏟아지다니. 아아 희고 붉은 혀가 잘려 떨어지다니. 푸석푸석한 밥알로 날아 왔지만,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을 체온을 느낀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정신의 굶주림보다 더 지독한 배고픔은 없다던 그였다. 그려, 밥은 밥으로 정직해야 돼. 그런 밥이나 한 끼 채우고 잘 가라.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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