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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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7.02.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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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먹자 , 꽃아
나무가 몸을 여는 순간

뜨거운 핏덩어리가 뭉클 쏟아지듯

희고 붉은 꽃떨기들이

허공을 찢으며 흘러나온다.



봄 뜨락에 서서 나무와 함께

어질머리를 앓고 있는데 꽃잎 하나가

어깨를 툭 치며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누군가의 부음을 만개한 꽃 속에서 듣는다.



입안이 깔깔하다.

한 번도 밥을 먹은 적 없이

혼자 정신을 앓던 사람아 꽃아

모를 일이다 누가 아픈지

어느 나무가 뿌리를 앓고 있는지

꽃아, 일 없이 밥이나 먹자.

밥이나 한 끼 먹자.



시집 '밥이나 먹자, 꽃아'(천년의 시작)중에서



<감상노트> 나무가 몸을 열다니. 제 스스로를 꺼내어 톱밥을 내주다니. 그래서 핏덩이가 쏟아지다니. 아아 희고 붉은 혀가 잘려 떨어지다니. 푸석푸석한 밥알로 날아 왔지만,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을 체온을 느낀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정신의 굶주림보다 더 지독한 배고픔은 없다던 그였다. 그려, 밥은 밥으로 정직해야 돼. 그런 밥이나 한 끼 채우고 잘 가라.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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