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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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2.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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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십시오"
4.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남녀 간의 재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여자를 어떻게 지체 높은 창리 대신을 모시게 할 수 있겠는가. 창리 대신에게 억지로 오입을 마련해 드리려다가 저 여자가 갑자기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반항을 해단다면 그 얼마나 망신스럽고 쪽이 팔리는 일이 되겠는가.

그래서 도암과 능소는 그녀를 며칠 간 꼼짝도 못하게 옥에 가둬 놓고 진을 빼놓은 뒤 죄인의 신분으로 오근장 성주의 침실 내부를 청소하게 하였다. 은밀하고 호화롭게 잘 꾸며놓은 오근장 성주의 침실 내부 장식은 보나마나 뻔한 것. 사방 벽에는 물론 천장이나 심지어 바닥에까지 낯 뜨거운 춘화(春畵)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이런 그림들을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성적 흥분을 자극시키는데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오근장 성주가 아리따운 여인과 더불어 질퍽하게 노는 장면을 그녀로 하여금 가까운 곳에서 몰래 지켜보도록 했다가 나중에 일을 모두 끝내고 난 다음 홀로 들어가서 깨끗이 청소를 하도록 했으니, 웬만큼 심한 석녀(石女)가 아니고서야 그녀의 마음이 온통 뒤숭숭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궂은비가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주룩주룩 청승맞게 내리고 있는 어느 가을 날.

밤늦게 잔무(殘務)를 모두 정리한 뒤 집으로 막 돌아가려는 창리 대신에게 부하 도암이 슬며시 다가가 이렇게 권하였다. 시간이 있으시다면 지금 물을 따끈하게 데워놨으니 목욕이라도 잠깐 하시라고.

창리는 이에 뭔가를 눈치챘는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고 우연히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순순히 그를 따라가 옷을 홀라당 벗고 목욕을 하기 시작하였다. 능소는 적당한 때를 기다리다가 그녀를 불러 목욕물의 따스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보고 오라며 슬며시 안으로 들여보냈고, 바로 그 순간부터 창리가 은근히 원하던 바 그대로 일이 진행되고 말았다. 비록 늙은 사내의 것이긴 하지만 일단 사내를 알게 된 그녀는 그 때부터 자진해서 창리가 목욕할 물을 데워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창리 역시 매일 밤 목욕을 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결국 들통이 나거나 밟히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들의 불륜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수는 없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창리의 아내가 자기 남편 창리에게서 뭔가 이상하다는 감을 느겼다. 평소와는 아주 달리 최근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맥을 못추고 그냥 나자빠져서 코를 드르렁 골아가며 잠을 자는 남편 창리가 그녀 눈에 점점 수상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보름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할까말까 하던 사람이 어떻게 된 게 요즈음은 거의 매일 온몸을 깨끗이 씻고 돌아온다.

'으흐음! 아무래도 요즘 저이가 하는 폼으로 보건대 어디 가서 자기 X대가리를 함부로 휘두르다 돌아오는 것만 같아. 그렇다면 으흠흠... 내가 그 현장을 잡아가지고 크게 경을 쳐주고 말거야.'

창리의 아내는 이렇게 마음먹고는 사람들을 풀어 남편 창리의 행동거지를 일일이 감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큰아들 각리를 따로 불러 그녀 나름대로 은밀한 지시도 내렸다. 요즘 너의 아버지가 하루 일과를 끝내놓고 나서 필요 이상으로 목욕을 자주하시는 것 같으니 웬일인지 아들인 네가 함께 들어가서 아버지 등이라도 시원하게 밀어드려가며 대체 무슨 연고인지 살펴보라고.

어머니의 숨은 속뜻을 대강 알아차린 아들 각리는 심히 못마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아버님을 감히 의심하시다니요 팔결성 내에서 우리 아버님만큼 모든 면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시고 또 실제로 존경을 받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을 한 번 의심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계속 의심을 하게 되는 법이옵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이런 쓸데없는 의구심을 모두 떨쳐버리십시오."

그러자 창리 아내는 펄펄 뛰며 아들 각리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아니다 얘야! 내가 왜 쓸데없이 네 아비를 의심하겠느냐 내 나름대로 뭔가 감을 잡았으니까 그렇지. 본래 가운데 추가 항상 흔들거리는 사내들이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중심축이 기울어지기 마련이거든. 만일 내 육감이 맞는다면 우리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가정의 평화가 깨어지지 않도록 네 아비의 주책없는 추 중심을 빨리 잡아줘야만 해! 불이 활활 타오를 때 끄는 것보다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할 때 확실하게 꺼버리는 것이 좋단다. 그러니 너는 아무 말 말고 내 말에 따르라."

창리의 아들 각리는 어머니의 결심이 너무나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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