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最初)와 최고(最古)에 대한 환상을 깨자
최초(最初)와 최고(最古)에 대한 환상을 깨자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1.22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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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부국장

지난 18일 충북대학교 박물관은 그동안 박물관에서 발굴해온 고고학 성과물을 고찰하고 논쟁하는 학술포럼이 처음으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충북지역의 구석기시대 유물인 `흥수 아이'와 1만2500여년된 옥산의 `소로리 볍씨'에 대한 논쟁이 점화됐다.

`흥수 아이'와 `소로리 볍씨'는 학계에서 꾸준히 문제제기 됐던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이란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특히 청원 두루봉 동굴에서 발견된 `흥수아이'가 구석기시대 인골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이 제기됐고, `소로리볍씨' 역시 1만2500년전에는 기후적으로 벼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주장이 나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날 진행된 학술포럼은 발굴기관이었던 대학박물관에서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지만, 지역사를 배운 시민으로서는 새로 써야 할 역사에 충격적이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교과서마다 한국 선사문화를 대표하는 인류화석의 하나로 배웠던 `흥수아이'가 고고학이라는 연구의 한계에 부딪혀 역사에 파문을 던진 셈이다.

이번 포럼을 계기로 유물에 대한 시대적 논쟁이 시작됐지만, 논란의 소지는 많았다. 객관적인 자료와 연구 축척 없이 성과 발표만 서두르다 보니 합리적인 논거를 만들지 못한 게 사실이다. 열악한 연구 현실에서 구석기 사람으로 분류됐던 흥수아이는 2011년 프랑스학자가 17세기에서 19세기 사람의 인골이라고 주장해 위상이 흔들렸고, 세계 최초로 알려진 `소로리볍씨'의 경우도 연대에 대해 학계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결국 다양한 의견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제시하면서 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부족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고고학에서 기존 학설과 대치는 새로운 자료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도 문제지만 검증되지 않은 가설단계에서 `최초'·`최고'라는 수사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학자의 주장이 힘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뿐만이 아니다. 지역 문화계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최초(最初)와 최고(最古)라는 단어다. `처음'이거나 `가장 오래' 된 것을 의미하는 이 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사회적 이슈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유혹적이다. 더구나 성과를 내야 한다면 이보다 매력적인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이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보편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직지'다. 직지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조선시대에 세계적인 인쇄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원인이 고려의 금속활자이고 보면 청주의 자부심과 위상은 최고라고 해도 모자랄 것이다.

문제는 최고(最古)에 매몰된 채 20여년을 버텨온 청주시의 정책이다. 청주시민이라면 누구나 즉답할 수 있을 정도로 직지는 우리 고장의 자랑이지만 최고를 앞세운 홍보전략으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직지보다 시대적으로 앞섰다고 제기된 `증도가자'의 등장으로 직지의 위상은 휘청거렸다. 증도가자의 진위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언젠가 무너질 사상누각이란 점에서 최고만을 고집할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유물의 성과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업적은 존중하면서도 학문적으로 객관적인 검증에 무게를 실어야 할 시점이다. 달콤함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다. 최고와 최초에 대한 환상이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스스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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