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76>
궁보무사 <276>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2.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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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어서 빨리 제 목을 쳐 주시옵소서"
3.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원래 창리는 자기 앞에 끌려온 여인을 팔결성의 엄격한 법에 따라 즉시 공개 처형을 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훌쩍거리며 고개를 살짝 쳐든 그 여인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창리는 즉시 마음을 바꿨다.

아! 예쁘다! 정말로 참 예쁘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저토록 꽃과 같이 예쁜 여인을 함부로 죽인다는 것은 너무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창리가 잡혀온 청상과부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잠시 얼이 빠진 듯 이상스런 태도를 보이자 그 옆에 있던 부하 도암과 능소가 즉시 뭔가를 알아차리고 이렇게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보아하니 저 여자의 혼자 힘만으로는 그 높은 나무의 가지 위에 밧줄을 걸어서 목을 매달기가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혹시라도 어느 누가 저 여인을 밧줄로 목매달아 죽이려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자 그대로 놔둔 채 재빨리 도망쳤을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맞습니다. 우리 팔결성 내에서 자살을 하려다가 들키면 공개된 장소에서 아주 비참하게 처형되고 만다는 사실을 삼척동자조차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저 여인이 어찌 그런 무모한 짓을 했겠습니까"

"이에는 필시 곡절이 있는 듯하오니 철저히 조사를 하고난 다음에 결정하시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그러자 창리는 고심을 조금 하는 척 하다가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좀 더 조사해 볼만하니 저 여자를 일단 가둬놓아라."

그러자 그때 그 청상과부는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악을 바락바락 써가며 크게 외쳤다.

"아닙니다. 나리! 이건 저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목을 맸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견하고 저를 살려서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옵니다. 시집오자마자 병에 걸려 누운 남편이 너무 안쓰러워 저는 봉두난발을 한 채 몇 달간 이리저리 의원을 찾아다니며 비싼 약을 사서 고치려다보니 가산은 완전히 탕진되었고. 결국 남편이 죽고 나니 저에게 남겨진 거라곤 굶주림과 심한 빚 독촉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먼 산골에서 시집을 온 힘없고 가난한 여자이다보니 이놈 저놈 자꾸만 치근덕거리는 통에 저로서는 굳이 살아가야할 이유가 없어졌사옵니다. 이 몸은 지금 당장 죽어도 억울함이 전혀 없사오니 어서 빨리 저를 죽여주시와요. 불쌍하게 죽은 남편과 살아생전 맺어보지도 못한 부부의 연을 저승에 가서라도 속시원히 맺어 볼까 하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난 그녀의 예쁜 두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으으음."

그때 창리의 얼굴 위에는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히 떠올랐다. 개인적으로야 살려주고 싶긴 한데. 당사자인 여자가 저렇게까지 독하게 나오는데 무슨 방법이 있으랴! 그래서 창리가 몹시 아쉬운 듯 빈 입맛을 쩝쩝거리고 있을 때 바로 곁에 서 있던 부하 능소가 몹시 반가운 말 한마디를 톡 던져 주었다.

"본디 사람이란 너무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되면 온전한 정신이 없는 법이옵니다. 보아하니 지금 저 여인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것 같을진대 일단 옥에 가두어놓았다가 나중에 정신이 제대로 들 때쯤 다시 불러 조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사옵니다."

"네 말에 일리가 있도다. 당장 저 여인을 옥에 가둬놓아라. 적당할 때에 내가 조사를 다시 해보리라."

창리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하자 그 여인이 별안간 악을 쓰듯 또 소리쳤다.

"아니옵니다! 나리! 어서 빨리 제 목을 쳐주시옵소서! 옥에 갇힌 채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정말로 견디지 못할 일이옵니다."

그러나 창리의 부하들은 울부짖는 그녀를 억지로 끌어다가 옥에 가두어 놓았다.

그 뒤 능소와 도암은 상관으로 모시고 있는 창리 대신을 자기들 딴엔 화끈하게 위로를 해드린답시고 열심히 머리를 짜내어 모종의 작전에 들어갔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옥에 갇힌 그 젊은 여자가 색(色)에 대해 어느 정도 눈을 뜨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그녀는 명색만 과부일 따름이지 시집 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남편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리고 말았으니 사내 맛을 전혀 모르는 숫처녀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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