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온도
관계의 온도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8.01.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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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토막잠이 몰려오는 오후다. 거실로 들어온 한겨울의 햇살이 소파에 노곤함을 풀어놓는다. 거기에 나도 피곤을 쏟아 놓는다. 오랜만에 맛보는 혼자만의 여유가 꿀맛 같다.

졸음을 쫓기 위해 찻물을 준비한다.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은 온도를 잘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차의 성향에 따라 달라 홍차와 녹차가 다르다. 차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대부분 차를 끓이는 적당한 온도는 80도라고 한다. 그래야 잘 우러나 향이 좋은 차가 된다는 것이다.

물이 끓는다. 차를 준비하는 번거로움이 싫어 잎차는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 과정도 즐거움이라는 이들도 있다. 제대로 차를 아는 사람들이다. 컵에 봉지커피를 털어 넣고 잘 저어준다. 커피를 마시면서 어디 차에만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랴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온도가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당한 온도는 몇 도일까. 친구, 이웃, 동료, 가족과의 사이에도 온도계의 도수는 제각각 수치가 다를 터이다. 가장 좋은 관계는 난로를 대하듯 하라고 한다. 너무 덥지도, 뜨겁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온도의 차이를 잘 조절하려면 거리의 유지가 필요한 법이다. 매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는 몇 도쯤일까 생각해본다.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온도가 0℃. 화상을 입는 온도는 40℃다. 사람과의 온도는 그 사이지 싶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 0℃에 가까운 사람이 있고 40℃에 가까울 수도 있다. 주위에 가까이 지내며 허물없이 지내는 이들이 나는 부럽다.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더없이 멀어진 경우도 보았다.

가까운 시형제가 남보다 더 못하게 되었다. 사소한 오해 때문에 깊어진 골이 시간이 흐르면서 깊게 패였다. 처음에는 자존심을 내세워 분노하고 화를 내더니 지금은 무감각해져 서로가 빙점에 서 있다. 얼음이 얼기도, 녹기도 하는 온도다. 그래도 나는 빙점이 얼기보다는 녹기를 기다리는 사람 중의 하나다. 조금만 훈풍이 불어도 데워질 우애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의 마법에 걸릴 때는 난로가 뜨거운지도 모른다. 때로는 화상을 입기도 한다. 덴 살이 욱신거리고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지는 진실한 사랑이다. 화상의 상처가 잘 아물면 귀한 인연이 되고 곪은 채로 덧나면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이 식게 된다. 장점이 단점으로 변하고 추억이 잊고 싶은 기억으로 남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람과의 온도를 맞추는 게 제일 어렵다.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인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쉽사리 친해지지도 못하고 멀어지기는 더 어려운 나다. 친구와의 온도는 중간쯤이 좋을 듯싶다. 은은한 온기가 전해지는 거리를 둔 난로 같으면 좋겠다. 그이와 나는 36.5℃가 아닐까. 한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잠을 자니 서로 체온을 지탱하지 않을까 해서다. 다툼으로 해서 금방 식어버리는 보일러 같은 나는 온도조절을 잘하는 그이 덕분에 유지가 되는 듯하다.

화상을 입기까지는 3.5℃의 간격이 있다. 40℃는 내 생애 딱 한 번 달아올랐던 온도이리라. 살면서 식어버린 도수지만 그 수치가 지금껏 버텨온 우리 부부의 온도였지 않았을까. 힘들어도 참아내고 아파도 견뎌낼 수 있었던 가족의 온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삶이 끝나는 날까지 이끌어줄 나의 온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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