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 사망·36명 부상 ‘예고된 인재’
29명 사망·36명 부상 ‘예고된 인재’
  • 하성진 기자
  • 승인 2017.12.25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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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주·정차 차량 소방·굴절사다리차 등 진입 막아

화재 취약 드라이비트 단열 외장재 사용 … 피해 키워

모든 층 스프링클러 미작동 … 허술한 안전검사 논란
▲ 제천 화재 발생 사흘째인 지난 24일 노블&휘트니스 스파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관계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유태종기자

?사망자 29명. 부상자 36명. 지난 21일 제천 노블&휘트니스 스파 화재가 남긴 가슴 아픈 상처다.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는 1994년 10월 24일 발생한 충주호 관광선 화재(사망 29실종 1부상 32) 사고 이후 최대다. 이번 제천 화재는 예고된 참사였다. 기본적인 규정만 지켰더라면 대형 인명 피해는 막았을 텐데 결국 흔한 법규 위반이 피해를 키웠다. 싼값에 쉽게 불에 타는 마감재를 사용하고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아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했다. 불이 난 후에는 건물 앞 불법 주정차량들로 소방차와 굴절사다리차가 빨리 진입하지 못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 불법 주·정차로 시간 허비

제천소방서는 화재 신고를 받은 지 6~7분 만인 21일 오후 4시쯤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불법 주·정차량으로 소방차와 굴절사다리차 진입에 애를 먹었다.

좁은 도로 양옆에 불법주차된 차들로 소방차가 현장에 진입하지 못한 탓에 진압과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소방차로 확보의 중요성은 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국민안전처가 2015년 전국 4만4325건의 화재를 분석해 발간한 `2016년도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 3분 내에 도착한 화재에서 사망자는 25명이었지만, 2분이 더 지나면 118명으로 급증했다.

10분 이내에 소방관이 도착해도 73명이 숨졌다.

하지만 소방관이 3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한 건수는 7924건(17.8%)에 불과했다.

# 피해 키운 `드라이비트' 외장재

참사가 난 이 건물에는 가연성 외장재 중 하나인 드라이비트(Drivit)가 사용됐다.

2015년 1월 5명의 사망자와 125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경기 의정부의 아파트 화재 사고도 드라이비트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에 접착제를 바르고 단열재를 붙인 뒤 유리망과 마감재를 덧씌우는 방식의 단열 시공법이다.

건축기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지만 스티로폼 등 저렴한 재료를 쓰다 보니 화재에 취약하다는 게 큰 단점이다.

문제는 드라이비트의 단열 성능을 좌우하는 EPS다.

EPS는 두꺼운 스티로폼이기 때문에 불이 잘 붙고, 빠른 속도로 확산할 뿐 아니라 다량의 유독가스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단열재에 대한 화재위험에 관해 많은 소방방재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연구를 통해 지적한 바 있고, 2007년부터 이 마감재를 사용한 건축물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만 10여 건에 달하는데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2010년 한국화재소방학회가 드라이비트로 마감된 건물의 연소시험을 진행한 결과, 화재 발생 3분 만에 최상부로 화재가 확산했다. 애초 실험 기준은 5~20분이었는데 이 기준에 도달하기도 전에 시험이 끝나 시험자료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2015년 의정부 화재 이후 6층·22m 이상 건축물 외단열은 불에 일부만 타는 준불연재부터 사용이 가능하도록 건축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제천 스포츠센터처럼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은 기준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사각지대에 놓였다.



# 스프링클러 미작동 … 허점투성이 안전검사

엄격한 안전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사태를 키웠다.

이 건물은 불이 시작된 이후 모든 층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알람 밸브가 폐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많은 화재 사고에서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해 사상자가 많이 생긴 점을 고려하면 관리 감독이 철저해야 하지만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발생 시 알람밸브의 압력이 떨어지면 배관이 열리며 작동한다. 이 밸브가 잠겨 있어 시설을 갖춰놓고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안전당국이 불시에 검사하지 않고 미리 건물주에게 조사 시점을 통보하다 보니 벌어진 인재다.

/하성진기자

seongjin98@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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