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74>
궁보무사 <27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2.09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리 성주의 것은 확인해보고 왔느냐"
1. 운이 없다 보면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여기는 팔결성 창리 대신이 근무를 하는 곳. 점잖게 좌정(坐定)을 한 자세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창리 대신에게 그의 심복 신배미가 다가와 예를 갖추며 아뢰었다.

"소수성에 갔다가 이제 막 돌아왔사옵니다."

"오, 그래 어찌 되었느냐"

창리가 부채질을 잠시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

"사리 성주의 딸에 대한 건은 방서라는 자가 말장난을 친 것이 거의 확실하옵니다."

신배미가 주위를 의식하는 듯 목소리를 조금 낮춰 가지고 대답했다.

"말장난을 쳤다니"

"실제로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만난 척하였다는 뜻이옵니다. 사리 성주의 딸 그곳이 털 오라기 하나 없는 미끈한 대머리 같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죄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뭐라고 아니, 그게 어떻게 어떻게 처녀의 그런 은밀한 내막이 널리 퍼질 수 있다는 말이냐"

창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사리성주의 딸은 나이가 차도 자기 또래들과는 달리 자기 그곳이 계속 매끌매끌한 상태로 있자 표시가 나게 주접을 떨었던가 보옵니다. 처음엔 자기 그곳 부위에 머리털을 짧게 잘라 아교풀 같은 걸로 붙여보거나 시커먼 먹물을 찍어 발라보기도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게 되자, 샘이 나고 질투를 크게 느낀 나머지 해괴망측하고도 아주 엉뚱한 짓거리를 저질렀다 하지요."

"해괴망측하고도 엉뚱한 짓거리라니 도대체 그게 뭔 말이더냐"

"자기를 모시고 있는 시녀들에게도 자기랑 그곳이 똑같아지도록 만들게 했다는 말씀이옵니다."

"뭐, 뭐라고 아니, 그, 그럼. 자기 시녀들에게도 그곳을 백(白)이 되게 만들었다는 뜻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사금파리를 깨어 그 날카로운 면으로 모근(毛根) 위를 싹싹 밀게 하거나 숫제 손가락으로 죄다 뽑아내도록 했다지 뭡니까 그러니 한 사람 두 사람 거치다보니 소문이 안 날리 있겠습니까"

"어허! 참으로 모를 일이로다. 이해하지 못할 일이로다. 여자의 시샘이나 질투는 우리네 상식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로구나. 자기 그곳이 밋밋하다면 그냥 맨송 맨송한 채로 살아갈 것이지 왜 애꿎은 다른 여자들의 그곳을 자기랑 똑같이 만들도록 강요한단 말이냐 그런다고 해서 다른 여자들의 그곳에 돋아날 것들이 자기에게 대신 돋아나는 것도 아닐진대. 으으음."

창리는 자기가 생각해도 몹시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천천히 다시 신배미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리 성주의 것은 확인해보고 왔느냐"

"아, 사리 성주의 수염 말씀이옵니까 그런데 그, 그게 좀."

신배미는 몹시 난감한 듯 말꼬리를 살짝 흐렸다.

"아니, 그럼. 가장 중요한 것을 못 알아보고 하등 쓰잘데기 없는 사리성주 딸의 수염 이야기만 알아가지고 왔단 말이더냐"

창리의 두 눈초리가 번쩍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아, 아니옵니다. 선물을 가지고 찾아간 저희들은 나름대로 별별 수단을 다 써가며 사리 성주님을 만나 뵙고자 노력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사리 성주님께서는 오늘따라 몸이 많이 불편하시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셔서 저희들은 사리 성주님을 직접 만나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신배미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허어, 그것참! 그럼 이를 어떻게 알아본다 정말로 그 방서라는 놈이 소수성 안에 몰래 들어가 사리 성주의 수염을 뽑아가지고 돌아온 건지 아니면 사기를 치는 건지. 으흠흠."

창리는 잠시 뭔가 생각을 해보는 듯 손에 쥔 부채로 자기 머리 위를 가볍게 탁탁 몇 번 두들기고 나더니,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