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격세지감
  • 오영열<청주시 서원구 과표팀장>
  • 승인 2017.12.17 1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 오영열

개발을 제한하는 구역, 즉 개발제한구역은 도시 주변지역을 띠 모양으로 둘러싼 형태를 갖춰 제도적으로 묶은 구역으로 통상적으로 `그린벨트'라 부른다.

1971년 도시계획법을 개정해 우리나라 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고 도시주변의 농지·임야 등 녹지공간을 조성하고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1978년까지 국토 면적의 5.5%에 해당하는 면적에 대해 개발을 제한하는 구역으로 지정했다.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선동·매봉·달계·시목·죽전리 일원은 50여년간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그랬던 이곳이 그린벨트에서 해제되고 산업단지가 들어온다고 한다. 오랫동안 개발이 묶여 있던 터라 현도면 지역이 개발로 발전하게 됐다는 반가움과 한편으로는 이 지역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만감이 교차한다.

필자가 살던 곳은 기차가 다니는 기찻길 옆에 위치한 오두막 초가였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거리는 10여 리 길. 비포장도로를 걸어가는 길에는 기찻길을 건너야 했다. 기찻길을 따라 걸으며 기차를 탄 승객이 차창 밖으로 버린 풍선껌이며 초콜릿을 주워서 먹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너무 못 먹던 시절이라 주운 껌은 한 번에 씹고 버리기 아까워 저녁에 잘 때까지 씹고 방 벽에 붙여 놓았다가 다음날까지 씹었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몰아치던 어느 날 철길에서 승객이 떨어뜨린 털벙거지를 주워온 형은 내 머리에 씌워줬다. “아니야! 형이 주웠으니까 형이 써”라고 했지만 “괜찮아, 동생이 써!”하며 머리에 씌워 주던 형님. 형님의 애틋한 정을 느낀 시절이었다.

1960~1970년대는 불에 약한 나일론 양말이 한참 유행하던 시절이다 보니, 얼음탕(얼음논)에서 놀다가 메기를 잡는 날이면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불을 피워놓고 양말을 말리다가 태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정월 대보름이면 동네에 사는 또래 아이들은 잔칫날이다. 찌그러진 깡통에 관솔을 담아 불을 지피고 여럿이 돌리면 그야말로 요즘 불꽃놀이 그 이상으로 황홀한 축제가 이어진다. 마을의 어떤 형은 쥐불놀이를 하다가 불똥이 지붕으로 날아가 불이 나는 바람에 큰일을 치르는가 하면, 쥐불놀이에 옷을 태우고,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개구쟁이 또래는 신이 나서 작정 모의를 제안한다. 동네 친구들을 다 모이게 하고 양동이를 준비해 온 동네를 돌며 부엌에 몰래 들어가 나물이며, 오곡밥을 서리 해다가 한곳에 모여 즐겁게 나눠 먹는가 하면, 겨울밤 초가 처마 틈에 잠을 자는 참새 잡는 재미는 놀이 중에 단연 최고의 즐거움이다. 또래끼리 2인 1조를 편성해 참새 잡기가 진행된다. 한 사람은 사다리를 받치고 한 사람은 그 위에 올라가 플래시를 밝히며 참새를 잡아 장작불에 구워 먹으면 그야말로 최고의 맛이었다.

여름 장마에 도랑물이 넘쳐 흘러가고, 하늘에서 집 마당으로 미꾸라지가 떨어졌다고 할 때면 형님은 얼기미이며, 양동이를 준비해 가지고 나와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하신다. 도랑에 들어가 얼기미를 대고 풀에 숨어있는 미꾸라지며 송사리, 붕어 등을 잡기 위해 발을 척-척-척 구르면 큰 붕어가 얼기미에 잡혀 탁 튀어 오른다. 이럴 때쯤이면 기분 최고로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큰 붕어 잡았다!

어린 시절 배고픔을 겪으며 자란 베이비붐 세대들은 삶 자체가 일이고, 놀이였으며, 공부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세상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