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보입니다
나는 바보입니다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7.12.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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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늦은 밤. 지인에게서 긴 메시지가 왔다. 첫마디가 심상치 않다.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단숨에 글을 읽어 내렸다. `나는 진정 바보입니다'로 시작된 글은 주말 서울 갔던 지인이 겪은 해프닝이었다.

딸애 이사를 도와주고 청주로 출발하며 평소처럼 휴대폰 내비게이션 어플을 켰단다. 그런데 배터리가 다 되어 바로 전원이 꺼졌다. 충전해 놓은 보조 배터리가 있기에 별걱정 없이 골목길을 빠져나오는데 처음 가 본 곳이라 방향을 잡을 수 없더란다. 신호 대기하며 보조 배터리를 연결했지만 방전되었는지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차량용 충전기를 연결했다. 하지만 아침까지 멀쩡하던 충전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수첩 뒤에 딸린 지도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서울거리는 무서웠다고. 낯선 골목길을 겨우 돌아 어찌어찌 중부고속도로 입구에 들어서고 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라고. 전자문명에 길들여져 어느새 바보가 되어버린 자신이 너무 슬펐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남는다.

나도 오래전 그렇게 서울거리를 헤맨 적이 있다. 휴대폰만 믿고 갔다가 통신이 되지 않는 바람에 더듬더듬 내려오던 길. 이정표를 보고 차선을 변경하려 했을 땐 퇴근 시간 밀린 차들에 갇혀 나갈 길을 놓치곤 했다.

예전엔 길 떠나기 전 미리 행로를 검색하고 메모했는데 내비게이션이 나온 요즘은 일단 출발부터 하고 행선지 검색이 시작된다.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은 수시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보니 요즘은 변경된 도로 사정이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휴대폰 어플을 선호한다. 과속단속도 안내해주고 실시간 도로 상황을 반영하면 밀리는 길을 피해 갈 수도 있다. 그런데 가끔 불편하다. 왠지 부림을 당하는 느낌과 함께 나조차 기계를 닮아가는 듯 기분이 나쁘다.

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실린 단편 <내게 너무 좋은 세상>에는 말하는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나온다. 과학기술 발달로 토스터기, 세탁기 등 가전제품들이 인간의 삶을 주도해간다. 기계에 의지해 돌아가는 삶이 우리 현실과 똑 닮아있다. 수많은 어플이 개발되면서 휴대폰 하나로 수많은 사람을 꼼짝없이 묶어둘 수 있는 시대. 이젠 기기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전자칩을 몸에 이식해 스캔만 하면 인터넷도 결재도 가능한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더불어 전자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아직도 전자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앉아서 할 일을 몸을 수고롭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나는 이 시대가 점점 낯설게 느껴진다. 숨 쉬는 공기처럼 삶에 배어들며 인간들을 지배해 갈 전자 문명에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믿었던 사랑조차 AI가 대신할 시대가 온다니. 인간들의 정서를 대신 전하던 수많은 문자는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스티브 호킹은 `인류가 AI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AI는 인류 문명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인간이 통제 가능하며 인류를 위해 선한 곳에 쓰일 거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전원이 꺼지면 인간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린다는 진실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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