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탐방을 시작한 뒤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떠난 곳이 바로 술박물관이다. 왠지 이름만 들어도 잔마다 술이 그득하게 고여 오는 지, 술심부름 때마다 주전자 꼭지서 찰랑거리는 막걸리를 마시며 돌아오곤 했다는 이야기부터 술지게미 먹으며 자랐다는 양조장집 딸까지 그야말로 술술 술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더구나 술이란 주제가 주는 호기심 때문인지 애주가는 물론, 주변 사람들이 갖는 술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와인관은 신화시대부터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이어지는 와인의 역사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며, 세계 각국의 와인 실물 전시와 와인 고르는 법, 보관법 등도 배울 수 있다. 벽면에는 유럽에서 포도를 수확할 때 사용하는 바구니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김 관장은 "중세기에 사용했던 포도수확 기구나 양조도구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면서 "프랑스인들은 포도를 많이 담기 위해 긴 바구니를 사용한 반면, 이탈리아인들은 옆이 넓은 바구니를 사용해 노래 부르며 포도를 수확했기 때문에 용도는 같아도 모양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지중해에서 발굴된 '암포라'라고 하는 와인저장 항아리도 전시되어 있다. 기원전으로 추정되는 이 항아리에는 지중해의 작은 생물들이 그대로 표면에 얼룩처럼 붙어 있어 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술의 맛과 향기를 좌우하는 보관방법 중에서 오크통을 빼 놓을 수 없다. 참나무로 만드는 이 통은 와인이나 위스키, 맥주를 숙성시키는데 필수적으로 사용되는데, 내부를 태운 뒤 술을 담아 놓는다고 한다. 이렇게 속을 태운 나무는 술의 좋지 않은 성분을 제거하고, 나무 자체에서 향이 우러나와 와인향기를 좌우한다고 하니 참숯의 효능을 서양에도 일찍 알아본 셈이다.
위스키, 브랜디등 다양한 증류주 전시
김 관장은 "박물관에 전시된 여러 문화재들은 대부분 수입된 것으로 인류의 역사보다 긴 역사를 가진 술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생활문화를 만들어내며 발달해 왔기에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며 앞으로 "소설 속 인물을 술병에 그려 넣는 중국 술문화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비롯해 건전한 음주문화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과 전통주 빚는 체험시간을 마련해 술과 문화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예술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탐방 코스인 음주체험관에서 칵테일을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언제부턴지 창밖에는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탄금호를 바라보며 술익는 마을을 그려본다. 술과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했던가. 술이 익듯 마음도 익어가는 사람의 눈길이 그리운 날, 류시화 시인이 권하는 '잔 없이 건네지는 술'로 이야기를 마무리해 본다.
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 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