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지킨 北 순교자 38위 시복시성 국내 절차 마무리
신앙 지킨 北 순교자 38위 시복시성 국내 절차 마무리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10.19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천주교중앙협의회서 폐정식

생애·덕행 등 번역 문서 봉인

내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
▲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아빠스와 동료 37위 그림.
▲ 수용소 생활에서 생존해 독일로 귀환한 수도자들.

북한 공산 치하에서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성 베네딕도회 관련 수도자들의 시복시성 국내 절차가 10년 만에 종료됐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19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예비심사 폐정식을 갖고 6·25전쟁 전후인 1949~1952년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을 받다 순교한 성 베네딕도회 남녀 수도자, 함경남도 덕원군 덕원자치수도원구와 함흥 교구 및 연길 교구 사제들의 시복시성 예비 심사(국내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날 폐정식으로 생애, 덕행 그리고 순교 명성에 대한 예비 심사가 종료돼 시복 재판 청구인인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와 부청원인인 이성근 신부는 시성 절차법에 따라 예비심사 조서와 사본,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문서를 봉인해 오는 21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할 예정이다.

시성성은 이를 면밀히 조사하고, 보고 문서를 작성하는 등 안건을 심사해 순교자 38위 시복시성을 결정한다.

왜관수도원은 2007년부터 북한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했다. 이후 2009년 주교회의 동의를 얻어 같은 해 12월 왜관수도원에서 예비심사 법정 개정, 개정부터 폐정까지 예비심사를 총 17회 실시했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는 해방 후 정치 사회적 혼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직자와 수도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공산당원에게 희생당했다.

순교자 가운데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13명, 독일인 사제와 수도자가 25명이다.

이들 38위 순교자 중 23명은 평양인민교화소와 자강도 만포 관문리 수용소 등지에서 총살이나 지병 등으로 살해됐고, 13명은 옥사덕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과로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한윤승(필립보)·신윤철(베드로) 신부는 해주 인민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근처 바닷가에서 생매장됐다.

순교자로는 초대 원산교구장이자 덕원수도원장인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 덕원수도원 출신 첫 한국인 사제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 고(故) 구상 시인의 형인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 교황 비오 12세가 독일 주재 교황대사로 있을 때 대사 비서로 일한 루치우스 로트 덕원수도원 원장 등이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한국에 처음으로 진출한 남자 수도원이다. 1908년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 요청으로 1909년 2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수도승 2명이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해 서울 백동(혜화동)에 수도원을 세우며 성 베네딕도회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됐다.

/김금란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