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이슬과 술
국화와 이슬과 술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10.16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가을은 조락(凋落)의 계절이라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을에도 봄 못지않게 많은 꽃이 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봄꽃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답박하고 우아한 기품을 지닌 것이 가을꽃인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국화이다. 국화는 생명력이 강해서 산이나 들을 가리지 않고 가을이면, 하얗고 노랗게 꽃을 피워내곤 한다.

예부터 국화는 속세를 떠나 사는 은자(隱者)들의 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는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국화를 애호한 데서 연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술 마시며(飮酒 其七)

秋菊有佳色 (추국유가색) 가을 국화는 빛깔도 좋아
裛露掇其英 (읍노철기영) 이슬에 젖은 꽃잎 따다가
汎此忘憂物 (범차망우물) 시름을 잊게 하는 술에 띄워
遠我遺世情 (원아유세정) 세상에 남은 미련 멀리 날려 보낸다
一觴雖獨進 (일상수독진) 비록 홀로 술잔 기울이지만
杯盡壺自傾 (배진호자경) 잔 비면 술 단지 저절로 기울고
日入群動息 (일입군동식) 해지고 만물이 조용해지니
歸鳥趨林鳴 (귀조추림명) 돌아오는 새는 울며 숲으로 날아들고
嘯傲東軒下 (소오동헌하) 동쪽 창 아래 서서 후련하게 휘파람부니
聊復得此生 (요부득차생) 잠시라도 또 이러한 삶을 얻겠는가?

가을을 대표하면서 아름답게 하는 것 둘을 꼽으라면, 국화와 이슬일 것이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국화 꽃잎은 가을이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를, 세상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준다는 명약(名藥)인 술에 띄워 마신다면,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을의 아름다움과 술의 마력에 흠뻑 빠진 시인에게 세상 근심은 감히 얼씬거리지 못하고 멀리 달아나고야 만다.

시인이 하는 일은 단 하나, 술잔이 비면 다시 따르는 일뿐인데, 그조차도 술 단지가 저절로 기울어진다고 하니,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무위자연의 상태가 된 시인에게 보이는 세상 또한 무위자연이었으니, 해가 지니 만물의 움직임이 멈추고, 새가 울면서 숲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쓸쓸함과 외로움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때 가을이 주는 선물을 찾아 나선다면,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에 젖은 국화 꽃잎을 술잔에 띄워 술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환희가 될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