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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불립(無信不立)

기자수첩 공진희 기자l승인2017.09.14l수정2017.09.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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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진희<진천주재>

지난해 11월 음성군 맹동면의 한 육용오리농장에서 AI가 발생해 전국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충북지역 392만마리를 포함, 3781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달걀값이 치솟고 양계농가는 만신창이가 됐다.

지난 2014년에도 음성군과 진천군을 중심으로 AI가 확산해 18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등 홍역을 치른 충북은 AI진앙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지난 2월 5일 마로면 관기리 젖소농장을 시작으로 같은 달 13일까지 7개 지역 농장 14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군은 소 953마리가 매몰처분되며 축산농가가 쑥대밭이 됐다.

올여름에는 폭염으로 닭, 오리, 돼지 등 117만여 마리가 폐사했다.

지난 7월 16일 폭우로 도심이 물에 잠기고 하천이 범람하며 논밭이 침수돼 1년 농사가 물거품이 됐다.

AI와 구제역, 폭염과 폭우가 숨 가쁘게 할퀴고 간 자리에 이번에는 살충제 달걀이다.

국내산 일반 달걀은 물론 정부의 친환경인증을 받은 달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발견되면서 먹을거리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이번 파문은 벨기에가 지난 7월 19일 처음으로 유럽연합에 피프로닐 오염 계란의 존재를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벨기에는 살충제 계란을 발견하고도 이를 유럽연합에 늑장 보고해 사태를 더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 이후 8월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에서 국내산 계란에서도 유독성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관련 농가나 업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혼란과 공포에 빠져 있다.

되풀이되는 재앙의 한가운데 공장형 밀집 사육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축산물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정부와 시장이 선택한 사육방식이다.

기업의 하청을 받아 농가들이 닭을 키우는 소위 계열화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정부정책과 반대로 가면 돈 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면서도 농민들은 대체로 정부 정책을 수용하며 농사를 지어 왔다.

그리고 우루과이 라운드(UR), WTO, FTA를 거치는 동안 농업과 농민은 자동차 반도체 등의 수출을 위해 양보와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

정부의 정책 방향대로, 기업의 요구대로 생명을 키워 온 농민들은 이제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식탁을 앞에 두고 불안과 불신을 마주해야 하는 소비자들은 정부와 기업에 이어 농민들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 사회는 이 음식이 우리 몸을 해치지는 않는지부터 걱정하는 신세가 됐다.

먹을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그 안전부터 걱정해야 하는 불안과 불신을 끝내기 위해, 삶의 질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해 이 재앙의 근본을 되짚어보고 그 대책을 논의하는 토론의 장이 깊이있게 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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