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67>
궁보무사 <267>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7.01.3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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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재수가 없으려니
"이놈들아,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어"

"임마! 어떻게 된 거냐 왜 너 혼자 와"

수동이 다급하게 그러나 남이 알아차리지 못할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자기 조카 모충에게 물었다.

"제 아우랑 마차를 몰고 가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대가 수고스럽게 함께 가서 제각각 절반씩 덜어놓고 돌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어요. 실려 있는 물건들이 서로 똑 같을 바에야 한 대만 가서 통째로 몽땅 다 내려놓고 빈 마차로 빠르게 돌아오는 것이 훨씬 더 편한 것 아니겠어요"

모충은 자기 딴엔 삼촌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은근히 바라는 듯한 눈치를 보이며 대답했다.

"뭐 뭐라고 아, 아니. 그 그럼. 네 아우 복대 혼자서 마차를 몰고 갔단 말이야"

수동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네. 그, 그렇습니다."

모충은 수동 삼촌이 몹시 당혹스러워하자 그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이놈들아!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어 응 아이고!"

수동은 더러운 벌레라도 씹은 양 보름달처럼 동그스름하게 생긴 얼굴을 완전히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 그럼. 제가 얼른 다시 돌아갈까요"

모충이 허둥대며 말했다.

"이제 틀렸어 이놈아! 복대가 빈 마차를 가지고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얼른 그 빈 마차 위에 짐을 절반쯤 덜어내어 실어놓도록 해야지. 어이구!"

수동은 답답하고 안타까운 듯 자기 주먹으로 복장을 마구 쳐댔다.

사실 수동과 내덕이 마차 두 대를 동시에 몰래 빼돌려가지고 약속된 장소에다 각각 절반씩 덜어놓고 돌아오도록 한 것에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이 숨어있었다.

마차 한 대가 슬그머니 빠졌다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느 누구든 의심의 눈을 가지고 마차 위에 실려진 짐의 크기부터 살펴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마차 두 대가 동시에 슬쩍 빠져나갔다가 똑같은 크기의 짐을 실은 채 나란히 돌아온다면 누가 이에 대해 묻더라도 엉뚱한 길로 잘못 들어가지고 한참 헤매다가 다시 돌아왔노라며 적당히 둘러댈 수 있다. 게다가 맨 뒤에 있었던 두 형제의 마차 위에는 적당히 덜어내더라도 표시가 쉽게 나지 않게끔 다른 마차의 것보다 거의 한배 반 이상 되는 짐을 가득 실어놓도록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엉뚱하게 벌어지고 말았으니.

수동은 애간장이 몹시 탔다. 그리고 한편 겁이 더럭 났다.

한벌성에서는 어느 누구건 공물에 함부로 손을 댔다가 발각이 되면 무조건 사형!

지금까지 이것이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거나 예외로 한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일이 이렇게 되어진 이상 사천 몰래 모충의 마차 위에 실려진 짐들을 복대가 몰고올 빈 마차위에 절반 정도 덜어서 옮기는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위험 부담이 몹시 크긴 하다만 지금으로써는 이런 방법만이 최고 최선책 아니겠는가.

그래도 수동에게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의 끈이자 위안이 되는 건 내덕이 사천 옆에 바짝 붙어가지고 기대 이상으로 시간 끌기를 엄청 참 잘해주고 있다는 점.

'그래, 어떻게 하든지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시간이나 제발 오래오래 끌어다오. 지금으로써는 이것만이 우리 모두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해결책일 뿐. 아! 아! 조카 복대놈이 빈마차를 끌고 빨리 와 줘야만 할 텐데'

수동은 가슴을 바짝 졸여가며 복대가 어서 빨리 빈마차를 몰고 와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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