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7.08.2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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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

가고 싶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다. 백두산 천지를.

어디 나뿐이랴. 대한의 아들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백두산호랑이가 포효하던, 독립투사들이 풍찬노숙하던, 국조 단군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영산으로 기능하고 있는 백두산 영봉에 올라 만세를 하고 야호를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런 후 눈물겹도록 푸르고 시린 천지 물에 두 손 듬뿍 담그고 싶으리라. 하여 많은 국민이 여름철이 돌아오면 배나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가서 천지를 보고 오지 않던가.

하지만 필자는 애써 참아왔다. 아니 기다렸다. 웬만한 관광지는 물론 내몽고자치주까지 중국을 친척집 드나들듯 했지만 백두산관광만은 마음의 보석처럼 아껴두었다. 알량한 자존심이 내 나라 내 땅을 가는데 왜 중국의 허락을 받고 가냐며 막았고, 금강산처럼 개성공단처럼 백두산도 가는 길도 열릴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자존심이었고 꿈이었다. 백두산 관광길이 열리는 건 고사하고 열렸던 금강산 관광길도 막히고 개성공단마저 폐쇄되고 말았으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래 더 늙기 전에 가자. 슬프고 안타깝지만 중국을 통해 갈 수 있다는 걸 다행이라 여기며 가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마침 충북시인협회(회장 심억수)가 지난 7월 말에 중국 연길에서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시서전'을 여는데 일원으로 참여해 동주 시인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귀국 전날 백두산을 단체로 관광하는 행운을 누렸다.

백두산 천지를 본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새벽 5시 30분에 숙소를 떠나 왕복 14시간 버스를 타는 강행군임에도 누구 하나 군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설렘과 기대가 백두산 어귀에 들어서고부터는 탄식과 걱정으로 바뀌었다. 백두산은 간데없고 장백산이 턱하니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감은 했지만 중국정부와 길림성이 이렇게까지 해놓을 줄 몰랐기에 등골이 오싹해지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훗날 남북이 통일되고 한국의 국력이 신장하면 중국에 내준 반쪽 백두산을 되찾으려 할 것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백두산 가는 산자락에 도로포장은 물론 고층빌딩과 고급주택과 기관건물들을 세 과시하듯 즐비하게 건축해 놓았고 그것도 양이 안 차는지 아직도 대형 시설공사를 곳곳에서 펼치고 있었다. 6·25 전 까지만 우리 동포가 살았던 백두산 언저리에 한족들을 대거 이주시켜 중국영토로 고착화하기 위한 포석임이 명백해 보였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인 일색이던 관광객이 지금은 중국인이 70%가 넘을 정도이니 저의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각설하고 백두산 아니라 할까 봐 장백폭포를 오를 때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굵은 빗줄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오늘 천지 보기는 틀렸구나 낙담하며 점심도 못 먹고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탓에 파김치가 된 상태로 봉고버스를 타고 천지에 당도하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게 개어 천지를 쾌청하게 조망하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 일행을 축복하듯 무지개까지 덤으로 보여주어 감동이 배가 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신비롭고 경탄스럽기까지 한 백두산 천지가 장백산 천지로 기능하는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잃고 한동안 깊은 속 울음을 울어야 했다. 천지는 실로 장엄하고 푸르렀으나 깊이 들여다보니 그건 푸르름이 아니라 가슴에 멍이 든 피눈물이었다.

내 나라 땅을 놔두고 남의 나라 그것도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는 중국에 와서 그렇게 오매불망하던 천지를 앞에 두고 피눈물을 흘리는 남쪽 민초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 쪽 백두산은 적막강산이다.

백두산과 천지는 우리 민족이 대대손손 지키고 공유해야 할 최대 자산이거늘,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듯 백두산이 장백산으로 둔갑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막아야 한다. 이 문제만큼은 남북이 하나 되어 기필코 막아야 한다. 우선 이름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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