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66>
궁보무사 <266>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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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여자 하나 만으로 벅찬 감이 있는데"
34.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지금 마차 행렬 맨 앞에는 말을 탄 내덕이 역시 말을 탄 사천 바로 옆에 바짝 붙다시피 해가지고 따라가며 그의 귀에 솔깃한 허풍 섞인 거짓말을 한참 해대고 있는 중이었다.

"사천. 자네라면 내가 충분히 믿어줄 만하지. 입이 무겁겠다. 나이에 비한다면 정력도 꽤나 센 편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원이 확실하겠다. 무엇 하나 의심나는 구석이라곤 전혀 없으니 말이야."

"고마우이. 내덕! 원래 내가 그런 면이 있긴 하다만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말을 해주니 기분이 썩 괜찮은 데 그래 내덕! 어쨌든 자네가 소개시켜주는 오입이니만큼 열심히 잘해 보도록 노력해 보겠네. 그리고 이번 일이 제대로 잘되어진다면 내 평생 자네 은혜를 잊지 않을 걸세."

사천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내덕의 우정()에 몹시 감격을 한 듯 거의 목이 메어지는 소리로 대답했다.

"에이. 이 사람아! 은혜라니. 친구지간에 무슨 은혜 따위를 따지고 그러나. 아. 참! 그런데 자네가 한 가지 꼭 주의할 점이 있다네."

"뭔데"

"그 여자는 몸이건 뭐건 다 주기로 작정을 했으되 행위시에 얼굴만큼은 꼭 가려달라는 거야."

"뭐라고 얼. 얼굴을 가려줘"

"응. 자기 남편이 어디에선가 빤히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흥에 겨워 숨소리를 쌕쌕 내고 있는 자기 얼굴을 보여주기가 퍽 민망하기 때문이겠지."

"음. 그거 참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로구만. 사실 계집이랑 그런 놀음을 할 때에는 그 얼굴 표정이 어떻게 변해지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한 건데. 이건 마치 술을 마시되 그윽한 술 향기를 맡지 말라는 것과 똑같잖아 좋아! 어차피 공짜 오입을 하는 판인데 이것저것 재거나 따질 수야 없지."

사천은 자기 딴엔 인심이라도 크게 쓰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으흐흐흐. 이 덜떨어진 인간 같으니라고! 아무리 두쪽 달린 사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침도 안 바르고 해대는 이런 얄팍한 거짓말에 홀딱 속아 넘어가는 걸까 이번 일이 적당히 마무리되었다는 판단이 서면. 내가 껄껄 웃으며 지금까지 한 말은 몽땅다 농담이라고 말해야지. 그나저나 이거 참! 사람이 너무 안속아 줘도 걱정이지만 이렇게 말을 하는 대로 깜빡 깜빡 잘 속아줘도 곤란해지는구만.'

바로 이때. 내덕이 정면으로 마주 쳐다볼 수 있는 곳에 다다른 수동은 왼쪽 손으로 자기 수염을 살살 쓰다듬은 후 자기 한쪽 뺨을 찰싹찰싹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이 복잡하게 꼬였으니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시간을 최대한 오래 끌어달라는 내덕과 수동 사이에 미리 짜놓은 약속 같은 신호였다. 내덕은 수동이 하는 짓을 보고는 가슴이 순간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어허! 큰일났구만. 이거 뭔가 일이 잘못되어졌나.'

내덕은 그러나 겉으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사천에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내가 기왕이면 자네에게 바람난 처녀 아이 하나를 덤으로 줄까하네."

"뭐. 뭐라고 아. 아니. 난 그 여자 하나 만으로도 벅찬 감이 있는데"

"어허! 그래도 입가심 삼아서 어린 계집 하나 더 데리고 노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은 일 아닌가"

"그. 그래도. 에이. 모르겠다. 사내놈이 주는 계집 마다하면 십년간 재수 없다고 하던데. 아무쪼록 내가 재수 없이 살지는 말아야지."

사천은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조그만 두 눈알을 도록도록 굴려가며 내덕의 입에서 쏟아질 기분 좋은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수동은 지금 이 두 사람이 하고 있는 꼬라지를 대강 살펴보고는 일단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수동은 얼른 말을 몰아 마차 행렬 뒤쪽으로 돌아가서 지금 어지간히 다가오고 있는 짐마차를 기다렸다.

"삼촌!"

모충은 수동을 보자 마차의 속도를 천천히 줄이며 자기 딴엔 반갑다는 듯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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