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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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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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이 인 수 목사(온누리수련원장)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마음을 같이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여 기쁨과 순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4~46).

마르코스. 엥젤스와 같은 자는 공산국의 혁명을 일으켜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했다. 공산주의 때문에 무고한 백성이 목숨을 잃었고. 현재에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국은 전란 속에서 대규모의 6·25전쟁을 겪은 나라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과연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다수는 공존할 수 없다고 한다. 반면 대다수의 일본인과 서구인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양자는 공존할 수 있을지 객관성 있는 대답을 얻고자 기독교와 공산주의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자.

기독교의 본질은 인간이 운명적으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자유와 행복. 새로운 의지와 능력을 줘 성령과 함께 세상을 신(神)국으로 만들려는데 있다. 기독교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고자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교훈에 따라 인간의 현재적 실존문제 해결과 미래의 이상적인 공동체 건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 문제 해결 방법은 인간의 이데올로기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신적역사에 의해 중생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의 창작능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2000년 동안 기독교 역사는 이런 운동의 역사다. 개인의 영혼에 구원만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살아야 할 사회의 혁신과 발전에도 큰 관심을 가지며. 인류의 역사 발전에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상은 오랜 역사를 갖고 오늘의 공산주의까지 발전하게 됐다. 공산주의는 3가지 종류가 있다. 소비제도를 공통의 이익을 통해 소모하자는 사상. 즉 플라톤과 초대 기독교회(행 2244-25)에서 종교개혁 당시의 토마스 문제나 유토피아 사상의 선구자인 토마스모어의 글에서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사상은 자본주의와는 관계없이 소비제도의 합리화를 위해 나타난 사상이다.

또한. 부르조아 계급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다. 오웬은 자본주의가 수반하는 3대 악인 기성종교 제도와 결애결혼 제도의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하고 비영리주의 근대 노동관리 제도의 사회 환경의 개선을 강조해 협동주의적 사회통계를 주장했다. 오웬의 이런 사상과 비슷한 사상이 독일의 3륜에 의해서도 강조됐다. 사회개혁사상은 노동자 계급위에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유물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산주의 미래관이 포함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르코스와 레닌을 중심으로 유물사관에 근거한 사회주의다. 여기에는 첫째.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반대한 사회를 구축하려는 경제혁명 운동이다. 둘째. 투쟁을 거쳐 계급이 없는 노동자가 모든 것의 완전 지배권을 가진 단일계급사회를 구축하려는 혁명운동이다. 셋째. 종교는 과학적 지식의 겉에서 유래한 것이며. 사람을 비현실 세계로 도피시키는 아편적 역할을 하기에 모든 종교는 없어져야 한다는 반종교운동이다. 넷째. 인류는 현사회를 적공산주의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유물적 역사관을 확립하고자 하는 운동이며. 끝으로 노동자들이 모든 생각과 소비제도를 관장하고 이상적 공산사회 건설에 필요한 수단인 정권과 군사력을 장악하여 인류사회 전체를 공산화 할 때까지 미국의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운동이다. 현재 한국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공산주의는 세 번째 종류의 공산주의를 말한다. 과연 '기독교가 공산주의와에 공존할 수 있는까' 6·25를 체험했던 국민들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 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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