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66>
궁보무사 <266>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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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부의 입장만큼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33. 재수가 없으려니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으응 아 참! 그, 그렇지!"

사천의 작은 두 눈이 갑자기 또 크게 떠졌다.

"휴우~ 하필이면 아버님 제삿날을 내 코앞에 두고 있으니 이걸 어찌하나. 기회는 참 좋긴 한데."

내덕은 이렇게 말하고는 마음이 무척 괴롭고 속이 상한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댔다.

"그럴 것이여. 자식이 오입한 몸으로 아버님 제사상 앞에서 어찌 절을 올리겠나 아 참! 그나저나, 내덕! 자네 그걸 어찌할 셈인가"

사천이 뭔가 잔뜩 기대를 하는 듯 군침을 질질 흘리고 두 눈을 깜빡거리며 내덕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가 시방 고민을 하고 있는 중야. 아! 이걸 어쩐다지. 알아서 대주겠다는 떡을 내가 일부러 마다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러나 자식된 도리로써 아버님 제사상을 일부러 욕되게 할 수는 없고."

내덕은 이렇게 알아들을 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사천의 눈치를 슬쩍 살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천은 이제 가벼운 흥분과 설렘, 그리고 기대감에 완전히 휩싸여진 듯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덕! 어쨌거나 그 부부의 입장만큼은 고려해 줘야하지 않을까 오죽이나 답답하고 한심했으면 그 부부가 그런 끔찍한 결심까지 했겠느냐고 순전히 자네를 믿고서 그런 어려운 부탁을 해왔을 터인데."

"맞아. 그건 맞는 말이야.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해봤다네. 이런 일을 나대신 맡아가지고 아주 지극 정성으로 잘해 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찾아보자고. 아 참! 사천, 자네 부모님 제삿날이 언제지"

"아, 벌써 지났지. "

이렇게 대답을 하는 사천의 얼굴 위에 갑자기 밝은 기색이 떠돌았다. 그러자 내덕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고는 낮은 목소리를 내어 사천에게 다시 물었다.

"사천! 이건 내가 자네를 믿고서 하는 얘기인데. 어때 이번 일을 나 대신 해보지 않겠나"

"뭐 내, 내가"

"응."

"예끼!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몹쓸 짓을 하겠는가"

사천이 벌컥 화를 내며 외쳤다.

"그래 으음. 그렇다면 내가 딴 데 가서 알아봐야겠구먼."

내덕이 이렇게 말하며 등을 막 돌리려고 하자 사천이 다급해진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잠깐! 내덕!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어떻게 친구인 자네가 부탁하는 것을 내가 모른척 하겠는가."

"그럼,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건가"

"아, 그럼. 친구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데 이런 일을 내가 못 도와주겠는가"

두 사람이 이렇게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차 행렬 맨 뒤에서 내덕 대신 말타고 따라가던 수동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지금 저 멀리 산등성이 길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곳을 향해 급히 달려오고 있는 마차 한 대! 아무리 봐도 아까 수동 자신이 자기 두 조카를 시켜서 슬며시 딴 곳으로 보냈던 두 대의 마차 중 한 대임이 분명했다.

'아니, 어찌 된 일이야 저렇게나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니. 어 아까 짐을 거의 그대로 싣고 있잖아! 그리고 마차 한 대는 어디로 갔지'

수동은 일이 뭔가 잘못 되어졌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 이럴 때에 그가 빨리 취해야만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을 최대한 안전하게 확보해 두는 것!

수동은 즉시 말을 몰아 마차 행렬 맨 앞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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